
[전기, 밀양-서울] 낭독(4)
휴대전화를 통해 전화와 문자로 다른 농성장의 소식이 쉴 새 없이 전해졌다. 시간대별로 순식간에 철거된 이웃 농성 천막 소식이 이어지면서 주민과 연대자들은 마지막 순간을 대비했다.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다쳤다더라, 주민들이 몇 명이나 연행되었다더라, 천막이 1시간도 안 돼 철 거되었다더라 등의 소식이 전해졌지만 동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먹던 그릇을 챙겨 경찰들의 발길질에 채이지 않게 했고 싸움이 끝난 다음 먹을 김밥을 주문했다. 곧 철거될지 모르는 천막을 야무지게 다시 묶고 몇 년을 이어진 산속 살림의 세간살이들을 씻고 닦았다. 누구는 노래를 불렀고 누구는 욕을 했다. '밀양 할매'들이 사슬로 몸을 묶었고, 옷을 벗었고, 땅에 몸을 뉘였다.
'끌고 가지 마라', '손대지 마라', 소리치고 아우성치는 소리와 안간힘을 쓴 몸부림이 엄청난 굉음의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에 묻히고, 경찰들이 손을 대기도 전에 헬리콥터가 일으키는 바람에 천막이 뜯겨 나가기 시작했다. 눈을 뜰 수 없이 흙먼지가 바람에 날리는 가운데 어디선가 날 카롭고 차가운 금속의 날붙이가 겨드랑이 밑이나 옆구리를 파고들어 사슬을 잘라내기 시작했고 옷을 벗은 이들이 짐짝처럼 들려 나갔다. 여기 저기 비명이 들렸고 '할머니들에게 손대지 마라'는 젊은 연대자들의 날 카로운 고함 소리가 헬기 진동 사이로 울려 퍼졌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에 앉아 좀 전까지 앉아 있던 천막이, '우리들의 춥고 따스하고 다정했던 집'이 헐려 나간 곳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밀양 할매'가 쇠사슬을 줍는 소리였다. 다음번에 또 써야 한다며 잘게 부서진 쇠사슬을 줍는 모습에 넋을 놓고 있던 활동가들과 연대자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 '우리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며 '시즌1을 끝내고 시즌2를 시작하자고 말했고 '와' 하는 웃음과 함께 힘찬 결의가 이어졌다.
산을 내려가는 마음은 무겁기도 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모두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고 생각했고 다시 이곳을, 이 마을을 찾아오리라 다짐했다. 흙먼지가 잔 뜩 묻은 얼굴에 찢어진 옷을 입고 마을 입구 바닥에 앉아 '시즌2의 운동' 을 이야기했다. 진심으로 '우리는 지지 않았고 우리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 었다. 주민들은 '연대자들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다'고 말했고 연대자들 또한 '어르신들 덕분에 우리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p. 256-259)
#에코부커스 #밀양전기서울 #밀양송전탑반대 #탈핵탈송전탑 #탈핵 #밀양할매 #환경정의 #새알미디어 #아름다운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