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편에 선 당신에게 _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생명들, 그 곁에 선 사람들의 기록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생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난개발과 반환경적인 정책으로 인해 갯벌과 강, 산과 숲, 마을의 터전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파괴의 현장마다, 이를 막아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들, 기자회견장에, 바닷가에, 산길 어귀에 자신의 하루를 내어놓은 사람들—우리는 그들을 ‘생명의 편에 선 사람들’이라 부릅니다. 새알미디어의 <생명의 편에 선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들과 마음으로 연대하고 싶은 ‘또 다른 당신’과 연결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새만금과 가덕도에서 신공항 건설을 막고, 지리산에서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며, 제주의 물과 노자산의 팔색조를 지키기 위해 골프장 건설을 저지하는 싸움. 산업폐기물처리장, 송전탑,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막기 위한 싸움. 이들은 모두 ‘지금, 여기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생명의 편에 선 당신에게> 세 번째 이야기는 양수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위해 7년째 싸우고 있는 홍천 풍천리 주민 허순이, 이창후님입니다. 가리산과 그곳에 깃대어 사는 생명들과 평화롭게 살아온 홍천 풍천리 주민들이 7년째 양수발전소반대를 외치며 싸우고 있습니다. 잣나무와 야생동물들, 이웃과 함께 그저 살던대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주민들의 이야기, 전국 곳곳 난개발에 반대하며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연대의 이야기를 새알미디어가 전합니다.
•
이 프로젝트는 <숲과나눔> 풀씨 12기 사업으로 진행됩니다.
•
새알미디어 유튜브채널: YouTube새알미디어
------------------------------------------------------------------------
잣나무와 함께 살아온 마을, 풍천리
단풍이 아름다운 동네. 인심이 좋은 마을. 잣나무와 함께 살아온 풍천리 주민들에게 잣은 곧 생계였고, 삶의 방식이었으며,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양수발전소 건설 계획이 들이닥치며, 주민들은 생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잣나무 숲, 야생동물,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마을 공동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깊은 위기감에 놓였다.
▲생명의 편에 선 당신에게 홍천 풍천리 주민 이창후, 허순이 홍천 양수발전소 반대투쟁 7년의 이야기 ⓒ 새알미디어
Q. 홍천 풍천리는 어떤 고장인가요? 마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이창후 : 저희 고장은 말 그대로 풍천리, 단풍 풍자에 내 천 자를 써서 단풍이 아름다운 동네로 이렇게 이름이 지어졌어요. 저희가 사는 고장은 잣이 많이 생산되는 고장이기 때문에 저는 어려서부터 잣나무와 같이 살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잣을 따고 잣을 소득원으로 해서 살고 있고요. 이 지역이 잣으로서는 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잣이 생산된다고 저희는 알고 있어요. 지금은 오히려 타 지역이 유명해졌지만 잣 일번지는 여기라고 알고 있고요. 잣나무 수령도 그렇고 지금 현재 이 동네에 많이 심어진 나무들이 50년 이상 된 잣나무들이 우거져 있기 때문에 품질도 여기서 생산된 것이 좋고요. 식재 된 잣나무들은 여기에서 생산된 잣을 가지고 발화를 해서 생산된 묘목을 가지고 심어진 걸로 알고 있어요. 홍천 전 지역에도 심었지만 타 지역으로도 나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잣이 유명한 곳이고 또 동네가 인심이 굉장히 좋은 동네예요. 그런데 이 양수댐이라는 게 들어옴으로 인해서 동네가 분열되고 또 서로 이웃 간에 사이가 안 좋아졌기 때문에 예전에는 동네에 마을 축제가 매년 이어져 왔었는데 이 양수댐이 들어옴으로 인해서 마을 축제 이름 자체가 없어졌어요. 그 마을 축제도 어떻게 이루어졌었냐 하면 이 지역에 살던 분이 예전에 이 잣나무 심기 전에 화전민으로 나가셨어요. 그랬던 분들이 고향을 찾아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어요. 나가 사시는 분들도 고향이 그리워서 동네에 찾아와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면서 하루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축제가 열렸었는데 동네 자랑이라면 자랑이었는데... 이 양수댐이 들어와서 그게 사라졌죠. 그런 면도 굉장히 아쉽죠. 홍천군 내에서도 그렇게 마을 축제가 이루어진 데는 없었어요. 다른 지역에서도 부러워했었는데 그런 공동체가 파괴됨으로 인해서 좀 많이 아쉽죠.
Q. 이 마을에는 주민들이 얼마나 사세요?
이창후: 등록된 가구 수는 한 150가구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화전 정리했을 때는 많이 줄었다가 여기가 살기 좋은 곳으로 보고서 타 지역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가구 수가 많이 늘었어요. 그러니까 이 양수댐이 들어오기 전에는 매년 한 10가구 정도가 늘었었어요. 근데 양수댐이 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부터는 뭐 거의 한 가구도 안 들어왔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Q. 두분은 풍천리가 고향이세요?
이창후: 저는 여기서 태어나서 현재까지 살고 있습니다. 60년 넘게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직장을 잡아 나갔었어요.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여기서 생활하면서 이 도로 하면서 막국수 장사를 했어요. 저희 어머니가 한 30년 막국수 장사하고 그러면서 살다가 저희는 또 중간에 잣을 못 따다가 제가 와서 또 잣을 따게 된 거죠. 여기 농사지을 면적이 얼마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잣에서 나오는 걸 가지고 자식들을 가르쳤어요. 아이들이 셋인데 지금은 이제 출가도 하고 이제 다 성장을 했는데 뭐 하여튼 간 자녀들 가르치는 데는 잣으로 인해서 문제없이 가르칠 수 있었어요. 저희는 잣 농사를 한 거죠. 저는 처음 이제 잣 따기 시작한 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84년도부터 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뭐 이 나이 되도록 따고 있지만 이게 참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생각이 들으니까 서운한 것보다 좀 분하다는 생각이 앞서게 되죠.
허순이: 저는 도시에 살다가 남편 따라 내려왔어요. 한 15년 됐어요. 슬픈 사연도 있었고... 남편도 여기서 이별을 했고요. 여기가 남편 고향이고 남편은 산을 너무 좋아했고 이 마을을 좋아했어요. 이 마을에 들어와서 정말 산에 가면 (잣을 딸 수 있어서)돈이 되니까... 시내에서 살면서 스트레스 받고 버는 거보다도 여기 와서 건강 챙기면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유기농 식품 먹으면서 산에 가서 일을 하면 그 수입이 더 많았어요. 도시에서 버는 거 이상으로 몇 배 됐죠. 남편은 떠났지만 남편 고향이고 하다 보니 떠날 수도 없고 또 남편의 흔적이 여기 풍천리 모든 곳에 다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더더욱 못 가는 거고... 그리고 저도 우리 남편한테 배운 게 산에 가서 잣따는 일이다 보니 한겨울에부터 봄까지는 소득원이 그거예요. 잣 줍는 거, 잣 주워서 판매를 하면 그 소득이 여자로서는 굉장한 소득이죠. 정말 상상도 못하는 소득이죠. 저희가 일을 3~4개월 정도, 하루 종일 하는 게 아니고 딱 오전에만 가서 일을 해요. 아침에 가서 산에 가서 점심 때 쯤 내려온단 말이에요. 그 4개월 정도가 1년이거든요. 그 소득이 몇 천만 원이 돼요. 그래서 하는 것도 있지만 이 마을이 참 경치도 좋고요. 공기가 좋아요. 여기가 홍천 읍내하고 저희 동네하고는 공기가 차원이 틀려요. 그래서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도 보면 여기에서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또 술을 마시면 술이 잘 깨고 너무 좋다는 거예요. 이렇게 좋은 동네인데, 이렇게 좋은 마을인데, 여기다가 물도 없는 곳에다가 하천을 막아 가지고 댐을 짓는다고 하니까 이게 말이 돼요? 말이 안 되잖아요. 차라리 홍천강에다가 진다면 우리가 이해가 돼요. 근데 시냇물 졸졸졸 내려가는 걸 갖다가 막아 가지고 그 아름다운 자연에, 우리가 먹고 사는 생존권이 달려 있는 잣나무 산을 다 베어 내가면서 그럼 거기에 사는 짐승들 동물들 어떻게 할 거예요?
▲잣나무숲홍천 풍천리는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잣이 생산되는 곳이다. 주민들은 생계수단이자 평생을 함께 살아온 잣나무숲과 숲에 깃든 생명들을 지키고자 양수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며 7년이 넘는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 새알미디어
파괴된 마을 공동체
홍천 양수발전소 사업은 2018년경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여느 지역의 난개발 사업처럼, 정작 마을 주민들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스스로 댐 예정지를 찾아다니며 피해를 조사했고, 양수발전소는 절대 들어서선 안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한수원과 홍천군이 제대로 된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송전탑 건설을 강행한 밀양, 청도와 마찬가지로 주민들 간 갈등이 벌어졌고, 마을 공동체는 갈라지고 말았다.
Q. 양수발전소 얘기는 언제부터 나왔고 또 어떻게 진행이 되어 왔나요?
이창후: 저희 동네에서는 양수 댐이 들어온다는 거를 아예 모르고 있었어요. 2018년도 그때부터 얘기가 나왔어요. 2019년도 초에 알게 돼서 저희가 대책위를 구성하고 군청에도 쫓아가고 각 지역 댐 막은 지역을 가서 현지답사를 하고 어떤 피해가 있는지 그런 거를 알아보기 위해서 동네 주민들이 동분서주 했어요. 그렇게 가보니까 이건 해서는 안 되겠다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다 해서 주민투표까지 했어요. 주민투표를 한 결과로는 97%가 반대하는 걸로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반대하는 걸로 가자 이렇게 했죠. 저희들이 의견은 냈지만 지금 피해 지역을 5km 반경 내로 한다 하니까 직접적으로 피해 주민은 관계없이 타 지역에 있는 분들이 인원이 더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 의견을 듣고 그냥 진행을 하는 격이 된 거죠. 실질적으로 피해 보는 주민, 인접해 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되는데 그런 의견은 들어주질 않고 애매하게 5킬로 반경 내로 잡아놓고 그 지역 주민들 의견을 듣자 하니까 그분들은 피해가 없으니까 찬성해야겠죠. 그냥 혜택만 받으니까요. 그런 부분 때문에 저희들은 고통 겪고 그 사람들은 “그 좋은 걸 왜 안 받냐”고 저희들한테 반문을 해요. 실질적으로 그분들은 한수원에서 관광도 많이 보내줬어요. 그냥 보내주면 뭐 술 먹고 가서 좋은 데 보여주고 그러면 좋다 그러겠죠. 그런데 실질적으로 망가지는 거는 가서 안 보고 오는 거죠. 한수원에서 보여주는 거 좋은 거 보여주지 그럼 나쁜 거 보여주겠습니까? 그렇다고 또 간 사람이 나쁜 점을 질문을 하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러면 거기에 나와서 설명하시는 분도 한수원 편에서 설명을 하겠죠. 그런 불합리한 것을 했을 때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그리고 군에서도 진행할 적에 보면 저희들이 (피해 입은)사진을 찍어다가 공무원한테 준 거는 숨기고 좋은 데를 찍어 가지고서는 반영을 했다는 거예요. 공무원이 뭐 실토한 거예요. 실은 그렇게 조작을 해서 계속적으로 추진해 온 거죠. 저희가 이렇게 공개해 달라는 문서들은 하나도 공개 안 해줘요. 비공개로 진행되고 그러면 어떻게 돼서 절차가 이루어졌는지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저희가 볼 수가 없어요. 저희 지역은 저희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러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런 이런 걸 허가했습니다 라고 보여줘야 될 거 아니에요? 근데 그걸 왜 숨기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모든 걸 비밀로 하는 거 밀실행정으로 하는 거에요.
Q. 이 양수 댐이 만들어지면 어떤 문제가 있나요?
허순이: 그러니까 저는 세워진다는 생각은 하지는 않아요. 지금도 절대 들어올 수 없다는 그 믿음이 더 강하고요. 공사 기간만 최장 14년이에요. 그럼 우리 나이가 지금 다 60,70이 넘었어요. 그럼 그때까지 살아 있겠어요? 우리는 공사 과정만 보는 거예요. 공사하는 기간 동안 우리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지금 하기도 전부터 도로 깐다고 다리 짓는다고 해서 포크레인, 레미콘 차가 하루에 120대씩 올라가요. 공사차가 얼마나 다니는지 지금 그 길가 마당에 사시는 분들을 빨래를 못 널어요. 이제 시작도 안 했으니까 그건 빙산의 일각이죠. 그래서 양수댐이 세워진다고 하면 지금 당장 여기에 땅값부터가 문제가 있겠죠. 그 다음에 전원개발 촉진법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처음엔 저희도 그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게 만약에 허가가 나서 진행이 되면 예를 들어서 저희 집 앞에다가 만약에 송전탑을 세우게 되잖아요. 저의 허락이 필요가 없어요. 그냥 세우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된다는 얘기죠. 주민들은 아무런 권리가 없고 정부에서 그냥 뭐 여기다 세워 하면 세우는 거예요. 저희도 이미 양수댐이 지어진 다른 지역에 가서 봤어요. 하부댐도 가봤고 상부댐도 가봤어요. 얼마나 절실했으면 저희 사비 들여 가지고 전국을 다 다녔겠어요. 가본 결과 정말 그 지역들 하천은 그래도 물이 많은 곳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돌 하나 뒤집을 수가 없는 거예요. 시커먼 물이 그냥 밑에 침전 돼 가지고 돌이 미끄러워 가지고 손에 잡히지도 않아요. 주민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해봤는데 주민들 역시 지금까지도 가슴을 치고 지금까지도 울분을 토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당시에 제 나이 때 반대해서 지금 한 20년, 30년 흘렀다고 하시는 분들이 연세가 80이 넘으셨더라고요.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거의 다 암으로 돌아가시고 거의 다 이사 갔다. 그리고 여기는 이웃이 없다. 양수 댐으로 인해서 아래윗집이 전부 다 원수지간이 됐다” 이거예요. 그리고 한수원에서 처음에 약속을 한 것도 뭐 전기를 공급을 하느니 뭐를 해 주느니 약속을 했대요. 근데 그런 거 다 없대요. 지금 20년이 흘렀지만 전기 요금도 가구당 6천원씩 대준다고 그러더라고요. 그거 대준 지도 얼마 안 됐다는 얘기죠. 한수원에서 하고 있는 얘기들이 공식적으로 정말 절차 밟고 진짜로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주민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그냥 사탕발림으로다가 좋은 얘기만 하는 건지 주민들이 너무 순진하고 솔직한 얘기로 맛있는 달콤한 거주면 그냥 주민들이 홀딱 홀딱 넘어가니까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진실이 없어요. 지금 너무 그게 너무 속상한 거예요. 군도 그렇고 한수원도 그렇고 한국도로공사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피해가 제일 심한 사람들은 딱 배제시켰어요. 보상이라도 받고 또 뭐라도 해서 돈이라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뒤에서 그냥 다 왕래가 있는 거예요. 우리 같은 경우는 직접적으로 굉장히 큰 피해자인데 그래서 막고자 이렇게 7년이라는 긴 세월을 개인 생활 하나도 못하고 여기만 매달려 있는 거예요. 이게 보도가 돼 가지고 진짜 대통령이라도 우리 동네 좀 왔으면 좋겠어요.
Q. 양수발전소 반대 투쟁은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되셨나요?
허순이: 계기가 뭐 있나요? 당연한 거죠. 이유가 없어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저희는 양수 발전소가 뭔지도 몰랐고 그 당시 2019년도에 저희가 2월 정도에 알아서 3월에 저희가 반대를 시작을 했는데 그때가 코로나가 왔을 때였어요. 코로나하고 양수댐하고 같이 온 거에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어온 거죠.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니고... 우리 마을의 이장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근데 이장단들끼리 회의를 해가지고 그쪽에서는 암암리에 마을에 양수댐이 들어온다더라, 이렇게 된다더라, 어떻게 추진하고 있다더라 이런 얘기를 우리가 나중에 들은 거죠. 그 당시에 이장이 들었으면 우리 주민들한테 그걸 발표를 했어야 되는데 그런 얘기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걸 듣고 주민들이 그냥 다 그냥 몰려간 거죠. 그래서 시작이 됐어요. 처음부터 그랬죠. 그리고 저희가 더 화가 난 게 뭐냐면 행정적인 절차 문제예요. 왜냐하면 뭐든지 정식으로 하면 저희는 이렇게까지 안 해요. 가장 고통 받는 우리를 딱 배제시켜 놓고 자기네들 편들어주는 사람들끼리만 지금 얘기가 되는 거죠. 그게 말이 됩니까? 내가 내 재산을 지켜야 되고 내 땅이, 내 집이 여기 있는데 여기서 먹고 살아야 되는데... 우리는 5km 반경이란 말이에요. 댐 바로 밑에서 우리는 하부댐을 지고 살아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는 물에 잠기는 마을도 있고요. 물에 잠기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좋아하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떨지 모르지만 그분들이 찬성을 했죠. 펜션하는 사람들이 찬성을 했어요. 보상받기 위해서...
이창후: 일반 주민들, 살던 주민들은 반대를 했고요. 살러 들어오신 분들도 반대를 했고 근데 일부 펜션을 하신 분들, 그때가 펜션을 내놨는데도 안 나갈 때였어요. 장사가 안 돼가지고 그때 양수댐 얘기가 나오니까 그분들이 보상받고 나가려고 해서 그걸 끌어들여서... 그런데 아직 안 됐죠. 아직 허가가 안 나왔기 때문에 보상은 지금 진행도 못하고 있어요. 어쨌든 그분들은 그러면 빨리 진행되게끔 하려고 막 그러고 그러다가 보상이 적게 나오니까 또 반발도 하고 지금 그러고 있는 거죠.
허순이: 그리고 양수댐이 만약에 세워진다고 하면, 춘천에 소양댐이 있잖아요. 그걸로 인해서 저희 지역에 어떤 안개가 낀다거나 그런 걸로, 기후적인 면으로 해서 저희들이 1년에 한번 씩 혜택을 받아요. 그 멀리서도 저희가 피해를 본다고 피해 주민으로 인식을 하고 있는데 (이 사업은) 저희 바로 머리 위란 말이에요. 그거보다 더 어마어마한 걸 하는 거죠. 지금도 날씨가 조금 추워지거나 더워지고 하면 안개 때문에 차 운전하기가 힘들어요. 근데 양수댐이 여기 생기면 저희는 거의 안개 속에 갇혀 살아야 돼요. 제일 우려하는 첫째가 생존권이 달려 있는 거고요. 두 번째는요.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는 거예요. 저희는 정말 동물을 사랑해요. 걔네들이 너무 마음에 걸려요.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서요. 공사하는 기간에 걔네들이 진짜 얼로 튈지, 얼로 갈지, 지금도 먹을 거 없어 가지고 내려와서 있다가 사고 나고 이러는 게 종종 있는데 그 꼭대기 산에는 보호 동물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이창후: 산양 많이 내려와요. 이 도로 아래까지 내려왔다 올라가요
허순이: 지금 이 개천에 물 많지는 않아도 가끔 물이 좀 있잖아요. 그럼 수달이 와서 놀아요. 저희가 사진도 찍었죠. 영상으로 다 남겨 보기도 봤지만 저희가 이제 처음에 이사 와 가지고 어망을 놨단 말이에요. 거기다 이제 뭐 된장에다 뭐 이것저것 해가지고 넣어서 이제 떡밥을 넣었는데 그 다음 날 가니까 고기가 많이 들어갔는지 어망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이거 누가 훔쳐갔나 그랬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수달 걔네들이 와서 놀다가 먹을 거 가지고 그거 끌고 가서 걔네가 꺼내 먹고 간 거예요. 그 정도로 수달이 지금도 있어요. 이유가 너무 많죠. 너무 많죠. 반대하는 이유가...
이창후: 근데 이런 데를 보존 못하면 우리나라에 보존할 데 크게 없을 거라고 생각이 돼요. 저희는 그러니까 전국 어디를 다녀 봐도 울창한 산림이 있지만 여기 특성상 잣나무 같은 경우는 유실수잖아요. 그건 소득원과 직접 연결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할 게 아니라 만들어진 거를 활용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훼손하지 않으면 안 망가지는데 그걸 왜 훼손해 가지고 구태여 일자리를 망가뜨리고 또 특별한 일자리를 또 만들려고 할까요? 그런 거는 좀 의문이에요. 전국에 저희들이 다 다녀왔다 그러잖아요. 댐 하부 지역에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거죠. 하천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저희들이 그 농수로 쓰고 다 물을 사용하는 하천인데 그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물이 많은 남대천도 망가지는 거죠. 여기는 어떻게 보면 적은 물이 흐르는 도랑인데 양수댐이 생기면 반으로 줄여서 내려 보내겠다고 하는데 지금도 적은데 그걸 반으로 줄여서 내려 보내면 여기는 하천은 그냥 숲으로 풀숲으로 그냥 우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밖에 없어요.
▲홍천 풍천리 주민 허순이, 이창후 양수발전소 건설에 대해 무책임한 홍천군에 항의하고 있다 ⓒ 새알미디어
허순이: 군수가 하는 말도 똑같아요. 경제 활성화, 관광 활성화, 일자리 창출 세 가지를 갖고 얘기하거든요. 그러면 일자리 창출이라고 하면 누가 일할 건데요? 연세들이 다 70이 넘었어요. 누가 일할 건데요? 일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관광 활성화요? 너무 웃기는 거예요. 제가 군수한테 물어봤어요. 군수님 양수발전소라는 곳에 애들 데리고 놀러 가 보신 적 있습니까? 관광 가신 적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물어봤어요. 한 번도 없대요. 근데 무슨 관광 활성화입니까? 관광 활성화가 될 수가 없는 곳이에요. 좋은 데 많은데 누가 댐 보러 갑니까? 그리고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하여튼 제가 생각할 때는 일자리가 됐던 경제 활성화가 됐던 뭐가 됐던 그냥 이 사업자들한테 돈 벌어주기 위한 사업을 하기 위한 거기서 뭐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저희가 무조건 반대하는 거 아니에요. 이게 마을에 세워져서 정말 이 마을을 위해서, 이 마을에 정말 좋은 일이 있다면 저희가 반대를 왜 하겠어요? 그렇지만은 우리나라에 어디를 가든 양수댐이 있는 곳을 가보면 전부 다 암 덩어리에요. 필요 없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어디서 들은 얘긴데 양수댐으로 인해서 전기를 만드는 건데 2023년도까지는 그 양수발전소가 한수원에서 계속 적자였다는 발표가 있었어요. 근데 2024년도에 조금 흑자가 났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러면 그 20년 30년 동안 적자였는데 그걸 왜 만들려고 그러죠? 그게 진짜 궁금하거든요. 너무 답답해요. 정말 시골에서 우리가 상대하고 대화하고 물어볼 만한 사람들은 전부 다 다 돌아서 가지고 자기네 일 아니라고 그냥 찬성한다는 쪽으로다가 싹 등을 돌리고 있으니 우리 주민들, 어르신들, 연세 드신 분들 몸은 진짜 얼마나 지금 다들 진짜 지쳤어요. 이제는 지쳤지만 그래도 저희가 아주 깡으로 버티는 거예요.(쇼츠) 그리고 이건 국책 사업이 아니에요. 유치 사업이에요. 그러니까 처음에 발표가 나면 지자체에서 여기 공모신청을 하는 거죠. 그래서 유치를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그 주민들이 반대하면 못하는 사업이라고 처음부터 그랬어요. 군수가 우리 주민들 따로 배제시켜 놓고 홍천 읍내 사람들하고 그 외 이장들하고 사바사바 해 가지고 유치를 했어요. 그래서 저희 주민들이 진짜 거의 한 달을 울며불며 매달려 가지고 쫓아가고 드러눕고 뒤집었어요. 그랬는데 다시 또 여기 몇몇 찬성하는 사람들이 알 권리 차원에서 또 진행을 한 거예요. 군수 쫓아가가지고 이거 들어와야 어쨌든 팔고 나가야 되고 보상받고 나가야 되고 또 장사해야 되고 이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이 들어가서 힘들게 그러니까 군수가 마음이 오락가락해 가지고 다시 또 뒤집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저희가 이건 아니다 우리가 반대를 한다고 하면 절대 들어올 수 없다고 하니 우리는 끝까지 반대하자 이제 그렇게 된 거죠. 그렇게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마을을 지키고 존엄을 되찾기 위한 7년의 싸움
거대한 자본과 권력 앞에서 싸워본 적 없던 주민들은 스스로 대책위를 꾸리고, 한수원 본사와 도청, 국회까지 발로 뛰었다. 주민들은 농성까지 감행하며 "군수 좀 만나자"는 간절함을 외쳤지만, 돌아온 건 퇴거 명령과 범법자 취급이었다.
Q. 7년째 어떻게 싸워 오셨나요?
이창후: 처음에는 이 싸움이라는 거를 해 본 주민들이 없죠. 이런 거를 경험해 본 주민이 없기 때문에 진짜 동분서주 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저희가 폭을 넓혀서 대책위 구성하고 움직이다 하니까 이제 이 지역에 활동가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박성율 목사라는 분을 만나게 됐어요. 목사님이 그런 거에 대해서 좀 잘 알고 계시니까 저희 동네를 좀 도와달라고 저희가 요청을 했어요. 그래서 시작이 돼서 여태까지 진행해 왔는데 저희가 매주 금요일 날 군청 앞에서 집회하고 또 때로는 뭐 타 지역에 가서도 무슨 일이 있다 그러면 한수원까지 쫓아갔어요. 본사까지 두 번을 갔다 왔어요. 본사에도 두 번을 갔었는데 가서 푸대접을 받고 왔어요. 한수원 경주에서 본사에서 하는 말이 “아니 의원이라도 데리고 오시지 어떻게 주민들만 와가지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의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는 주민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에요? 주민이 가장 중요한데 그런 말을 했을 때 아 이게 벽에 부딪히는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렇지만 저희 주민들은 끝까지 이걸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국회도 찾아 갔었고 또 도청에도 찾아갔었고 작년 같은 경우에는 군수하고 면담을 요청했어요.
이창후: 여태까지 군수님은 모른다고 책임이 없다고 그랬어요. 책임이 없다고 그러면 한번 어디에 책임이 있는지 밝혀 보자 해서 풍천군하고 한수원하고 주민하고 3자 대면 토론회를 시작했어요. 작년 7월 15일 토론회를 해서 “그러면 군수님 할 일이 없다고 그러셨는데 군수님이 할 일이 없는지 있는지를 우리가 한수원 있는 데서 한번 얘기를 해 봅시다. 그리고 추진 과정에서 군수님이 책임이 없다고 그러면 우리도 그럼 다른데다가 의견을 제기 하겠다” 그래가지고 토론회 과정에서 저희가 한수원에다가 질문을 했어요. 그러면 한수원이나 산자부에서는 홍천군에서 이 양수댐에 대한 거를 손을 놓게 되면 독자적으로 이 양수 댐을 할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을 했더니 맨 처음에는 한수원 소장이 “합니다.” 그랬어요. “그건 확실히 말씀을 하셔야 된다. 이거 전국에 유튜브로 중계되는 거다.”그러니까 한수원 소장이 “홍천군이 없으면 한수원과 산자부에서 추진할 수 없습니다.” 라는 답을 내렸어요. 그러니까 홍천군수가 이제 할 말이 없는 거죠. 권한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할 말이 없었던 거죠. 군수가 이제 도망을 가려고 했었어요. 그러니까 주민들이 붙들었어요. 그럼 답이 나왔으니 우리 주민들이 “반대하면 못 한다고 했으니 그러면 관둬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이렇게 진행이 됐는데 관둘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저희 주민들이 이제 제안을 한 게 “진행이 됐으면 관둘 수 없다고 하는 거면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보자. 군수님이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고 주민들이 빠져나갈 구멍도 있어야 되는 게 아니냐. 그러면 저희가 제안을 할 테니 군수님이 합당한지를 들어보세요.” 저희가 이제 만장일치 제도라는 거를 이제 제안을 했어요. 만장일치라고 하는 것은 한쪽에 편중된 게 아니라 반대 측 전문가 또 찬성 측 전문가 모여가지고 토론을 해가지고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거기에 토론을 하고 또 심판하는 심판관들도 전문가들 갖다 앉혀놓고 하는 거죠. 우리(주민)를 땡깡 놓는 걸로만 생각하니 우리 측 전문가, 찬성 측 전문가, 한수원에서 전문가들 불러오고 해서 토론회를 가져서 거기에서 결론 나는 거 가지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주민들은 그거에 수긍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군수님이 나중에 아 “그럼 하겠습니다.”했어요. 저희들이 박수를 쳤어요. 우리가 여태까지 하면서 문서로 해도 잘 믿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문서로 작성을 해 달라고 했는데 담당 공무원하고 나가서 만들어 온 것이 그냥 일반 토론회로만 만들어 온 거예요. 그래서 “ 이거는 아니다. 만장일치 토론회로 군수님이 인정을 하셨기 때문에 저희들도 박수 치고 같이 호응을 했는데 그거를 토론회를 하려고 하면 의미가 없다.” 그랬더니 두 번째 만들어 왔는데도 똑같은 상황으로 만들어 온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는 그러면 수긍을 못한다. 만장일치로 그냥 하자” 그랬더니 공무원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안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러더니 군수가 이제 도망을 간 거죠. 그때 12시가 넘었어요. 자정이 넘어서고 그러니까 주민들은 허탈한 거예요. 그때부터 군수님이 약속한 거를 지키지 않으니까. 그래서 약속한거 지키라고 일주일 동안 군청에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저희들을 퇴거 불응이라고 연행을 한 거예요. 허순이님이랑 어르신들 일곱 분이 연행이 됐어요.
허순이: 경찰서 유치장도 들어가서 하루 살고요. 저희는 그런 거 모르고 살다가 딴 세상 가서 살다 온 거예요. 경찰인지 형사인지 모르지만 뭐 조서를 한대요. 조서 꾸미고 거기 신문하고 가방 뺏고 핸드폰 뺏고 갖다가 방에다 딱 집어넣어 닫더라고요. 철조망 이런 거를 우리가 그걸 압니까? 죄인 된 거예요. 군수 좀 만나겠다고 이층 군수실 들어가는 중간 문 앞에서 어르신들이 군수님 좀 만나서 우리 대화 좀 하자 그리고 도망갔으니 그러고서는 있던 시간이 거의 한 일주일 됐어요. 그때가 작년 이맘때 여름이었어요. 저는 이제 많이 못 가고 계속 이제 지켜야 되니까 어르신들, 남자분들, 교대로 주무시고 너무 더웠어요. 모기도 많이 뜯기고 그렇다고 그래서 이불을 덮고 잡니까 뭐 합니까? 그냥 맨바닥에 잔거예요. 스티로폼 하나 깔고 낮에는 피해 안 주려고 한쪽에 플랜카드 하나 정도 걸고 그냥 앉아 있는 거죠. 군수를 만날 수 있다는 방법이 그거밖에 없었으니까요. 결국에는 못 만났는데 일주일 딱 되니까는 기동대가 백오십 명이 왔어요. 백오십 명 저 처음 봤어요. 다 어르신들이고 나만 제일 젊어요. 제가 올해 64세인데 제일 젊어요. 다 70세 싹 넘었어요. 다 70-80대 그렇죠. 그러니까 그분들이 얼마나 힘들어요. 선풍기도 없는 데서 자는데 새벽이 되니까는 군청 직원들이 뭐 왔다 갔다 자기네들끼리 뭐 무슨 007작전을 하는지 막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무슨 공무원이 새벽 6시부터 출근을 해 내가 그랬어요. 뭐 어쨌든 퇴거 명령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죠. 우리는 “군수를 만나기 전에 못 나간다.” 그랬더니 기동대 차량 4대가 와서 군청에 섰는데 홍천에서 그런 일 아마 처음일 거예요. 그리고 방패를 딱 해 갖고 의경들이 와가지고 자기네 몸 가리는 거예요. 영화에서나 보던 걸 거기서 봤으니 실제로 얼마나 기가 막히고 정말 인간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이 이건가 싶을 정도로 너무 좌절을 했어요. 우리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되나, 내가 내 집 지키고 내 고향 지키고 내 마을 지키자고 군수도 만나겠다고 와서 있는데 우리가 뭔 짓을 했는데 와가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잡으러 온 건지. 한 사람에 네 명이 붙어가지고 다리 잡고 양쪽 팔 잡고 해가지고 끌고 내려가는데 정말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더라고요.
▲홍천 풍천리 주민 허순이, 이창후 홍천군청 앞에서는 매주 금요일 강원생명평화기도회 및 양수발전소.송전탑 백지화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새알미디어
허순이: 저희가 그 군청 앞에서 천막 치고 동네 주민들이 교대 순번 돌아가면서 매일 천막 농성을 했죠.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뭐 진짜 날씨가 얼마나 춥든지 얼마나 덥든지 그걸 오랫동안 했어요. 그때는 주민들이 출석 장부 만들어 가지고 조를 짜가지고 돌아가면서 했단 말이에요. 그 당시에는 거의 주민들이 97%가 다 반대였어요. 저희가 군청에서도 이렇게 집회하다 보면 그 떡대 같은 애들이, 무슨 깡패도 아니고 걔네들이 공무원이래요. 걔들이 와가지고 저희들하고 몸싸움을 해요. 우리가 군수 만나려고 들어가려고 하면 문에 딱 이러고 서요 한 20명 정도. 거기서 우리 실신 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저희 시골 사람들이 집회를 해봤습니까? 투쟁을 해봤습니까? 어디 가서 말 한마디 못하고 정말 그 순진하던 사람이 이렇게 변한 거예요. 이렇게 사람을 이렇게 망가뜨려 놓은 거예요. 어디 가서 진짜 누구 욕할 줄도 모르고 그냥 사랑하고 서로가 보듬어주고 사로 나눠 먹고 이런 마을이었어요. 여기가 이렇게 된 거예요.
Q. 그 때 연행돼서 지금 재판 중이신거죠?
허순이: 저희가 퇴거 불응했다고 경찰서로 갔는데 저희들은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연행을 해가니까 솔직히 경찰은 무섭잖아요. 그런데 한 번도 안 가봤으니까 그래 갔는데 누구랑 통화할 것도 없어요. 얘기할 틈도 안 주고 무조건 갖다가 다 밀어버려 그냥 경찰서에다 집어넣더니 문을 탁 잠가요. 그랬더니 가방 탁 뺏어, 핸드폰도 안 된대. 방으로 들어가래요. 한 방에 아마 3명씩 이렇게 들어갔을 거예요. 이제 오전에 갔으니까 이제 점심시간이 지났죠. 그러니까 저희도 이제 괘씸한 거예요. 경찰들도 괘씸하고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으면 상관이 없는데 우리의 권리를 찾자고 나가서 그런 건데 이렇게까지 우리를 짓밟을 수가 있나 우리도 사람이고 인간인데 그래서 이제 거기서 점심 먹고 그러고 나서 조서가 들어간 거예요. 진술을 하는데 그때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있는 그대로 얘기한 거예요. 우리는 군수 만나려고 간 거고 우리 마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과 똑같이 얘기한 거예요. 그래서 진술이 끝났는데 그때 당시에 만약에 우리가 진술을 안 하고 묵비권 행사를 했으면 검찰 구형이 안 떨어지고 바로 재판으로 들어가면 벌금이 이렇게 까진 안 나온대요. 근데 저희도 몰랐잖아요. 그래가지고 벌금이 이제 떨어진 거예요. 200만 원짜리가 세 분이고 300만원이 4명인가 그럴 거예요. 검찰에 가지도 않았는데 벌금이 나왔죠. 저희가 뭐 무슨 돈이 있어요. 마을 지키겠다고 나가서 투쟁을 하다 보니 돈이 어딨어요. 밥벌이고 뭐고 우리 총무님도 그렇고 지금 일을 못하는 거예요. 7년간 그 삶이 완전히 피폐한데다가... 아니 검찰에서 우리한테 한 번도 안 부르고 우리 의사 들어보지도 않고 벌금부터 탁 때리는 거예요. 그런 법도 있나 싶어요. 지금 진짜로 그래가지고 이제 목사님께 너무 억울하다고 했죠. 벌금이 300이 나왔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300만원 낼 돈이 없어요. 하루에 10만 원씩이라고 하면 딱 30일 살고 나오면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죠. 주민들 다 그렇게 생각을 해요. 박성율 목사님께서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고 서로가 좀 각출해서라도 변호사중에서도 도와주시는 분이 있으니 그분을 통해서 우리 그럼 어쨌든 재판을 걸어보자 그래가지고 이제 재판이 들어갔어요. 어제 2차 했어요. 어제 최후 진술을 했는데... 일곱 분한테 싹 이제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얘기 하라고 했는데 어르신들이 그런 데 가서 겁이 나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정말 간절하니까 말씀들을 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이 양수 댐 들어오면 안 되고 양수 댐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동네가 망가졌고 나는 양수 댐에 들어오면 진짜 눈 감고 못 죽는다는 정도까지 얘기했고 저 같은 경우는 진짜 눈물이 앞을 가려 가지고 말을 못 했어요. 나는 뭐라고 얘기했는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이 7년이란 세월 동안 이 가슴에 너무나 한이 맺혀 가지고 어디 가서 누가 무슨 말만 하면 말보다 눈물부터 나와요. 정말 눈물샘이 여기 가슴에 있어요. 그래가지고 무슨 말만 하면 울컥 해가지고... 우리가 그 공무원들한테, 한수원한테 너무나 무시당하고 짓밟혔어요. 우리가 왜 우리가 짓밟혀야 되는 건지, 어디 가서 얘기만 하면 이제 눈물부터 울컥 하는데 어제 그래서 재판 결과가 나쁘게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그런 생각을 좀 했어요. 왜냐하면 주민들이 가슴 속에 있는 얘기를 했으니까 진실하게 했으니까 그 결과는 두고 봐야지 알겠지만요. 8월 14일이 선고일이에요.
Q. 양수발전 건설이 지금 허가가 나진 않은 건데 현재 어떤 진행상황이 어떤가요?
이창후: 지금은 실시인가를 신청해 놓은 상태고요. 한수원에서 원래는 7월에 실시 인가가 나온다 그랬어요. 근데 지금 8월로 연기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도로 같은 경우에는 한수원에서 미리 자금을 대고 하니까 아마 미리 인가가 났던 것 같아요. 근데 댐 공사는 실시 인가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못하고 있고요. 그런 준비만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희는 최종적으로 실시인가 나기 전까지 어디든 매달려서 지금 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Q. 홍천군과 환경부는 어떤 입장인가요?
이창후: 군에서는 신청을 했으니까 한수원에다 그냥 맡겨놓고 있는 것 같아요. 인허가 절차 들어오면 자기네는 그 절차에 의해서 해준다고만 해요. 그러면 그 내용을 공개해라 그러면 공개 안 해요. 지금은 다 밀실 행정을 계속 이어져 가고 있는 거죠. 윤석열 정부에서는 환경부 권한이 무조건 개발 쪽으로 갔기 때문에 저희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Q. 양수발전소 문제와 함께 송전탑 건설 문제도 있죠?
이창후: 송전탑 관련해서 용역을 한 걸로 알아요. 용역결과가 나왔는데 저희가 누차 얘기를 했지만 계속 숨기고 있습니다. 여태까지도 얼리 가는지 얼리 오는지도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송전 선로가 어떻게 지나가는지)아예 모르는 거죠.
허순이: 지금도 저희는 다른 송전탑 지역들과 연대를 하는 거예요. 송전 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이랑 우리 양수댐이나 난개발 쪽으로다가 저희가 연대해요. 아직까지 저희는 송전탑에 대해서는 결과가 나온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는 저희가 지금 양수댐 반대하는 이유가 꼭 나만 잘 살자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가뜩이나 날씨가 이렇게 덥고 비가 왔다가 갑자기 쏟아졌다가 이런 지금 상황인데 저희는 크게 보고 가는 겁니다. 짧게 보고 가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우리 미래 세대들 생각하면 얼마나 우리가 진짜 죄를 많이 짓고 가는 겁니까? 왜 있는 자연을 갖다가 다 지켜도 부족한데 그걸 왜 자꾸 없애가지고 그냥 기계적인 것만 만드냐 이거죠. 주민들에게는 그런 마음들 다 있어요. 어쨌든 양수댐이 안돼야 송전탑도 못 들어오는 거죠.
끝나지 않은 싸움,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다짐
주민들의 뜻은 명확하다. 양수발전소를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 나 하나만이 모든 생명을 위한 싸움이라는 신념, 그리고 이 싸움을 통해 눈뜨게 된 더 넓은 연대의 마음이 주민들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주민들의 다짐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Q. 앞으로 주민들께서는 어떻게 싸워 나가실 계획이세요?
이창후: 애초부터 시작할 때 그랬습니다. 시작을 하면 끝을 맺어야 된다. 중간에 뭐 다른 마음을 먹어본 적도 없고요. 어차피 우리 과제는 끝날 때까지 싸운다 그런 목표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요. 추오도 변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 고장을 지키기 위해선 끝까지 계속 지키기 위해서 계속 싸울 겁니다.
허순이: 이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난 7년이란 세월을 그냥 제가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얻은 게 뭐냐면 그래도 제가 이 나라를 제가 정말 뭐라 그럴까... 그러니까 애국심이죠. 나라를 위해서 내가 이 자연을 지켜야 되고 이거 훼손하지 말아야 되고 이런 것들을 모르고 살았어요. 그냥 남의 일로만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막상 접하고 보니까 지금 여기 PD님도 계시지만 이 자연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그리고 진짜 기후위기라는 얘기를 엄청 하잖아요. 근데 기후 위기라는 말만 하지 제가 하는 게 아쉬운 게 뭐냐면 기후위기가 오게 되면 어떠한 지 아니까 오지 않게 할 수 있는 그런 대책 같은 거를 제가 이렇게 방송을 통해서나 이렇게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정말 그런 게 참 절실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기후위기와도 이게 똑 같이 가는 거예요. 양수 발전소 만드는 거 이런 거 전부 다요. 산이 있고 숲이 있기 때문에 우리 풍천리 마을이 지금 한여름에도 시원한 거예요. 다른 지역에 있다가 우리 동네 들어오면 사람들이 여기 왜 이렇게 시원해 그래요. 저희 에어컨 거의 안 켜요. 근데 그러면 그게 다 누구 덕이에요? 이 나무, 산림 덕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제가 우리 총무님 말씀처럼 우리 마을뿐만이 아니고 앞으로는 제가 조금 더 할 일이 있다. 계획이 뭐냐면 나도 이제 전국을 다니면서 좋은 일 좀 하자. 세상에, 우리나라에 정말 아프고 고통 받고 정말 억울하신 분들, 우리 같은 분들 그런 분들이 있으면 어디든지 진짜 가서 손 잡아주고 같이 하고 싶어요. 이제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생명편에선 우리가, 생명편에 선 당신에게 (이창후, 허순이님께 보낸 편지)
“꼭 양수 발전과 송전탑을 막아내요. 평화로운 마을을 지켜내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부산에서 이동환 님)
“저 있는 곳에는 까치도 있고 참새도 있고 피라미 송사리 흰수마자 미호종개 헤엄쳐요. 여기는 흰목물떼새도 있고 수염풍뎅이도 살아요. 흐르는 강물 한참 바라보고 바람 맞으면 더위도 잊고 여기는 그냥 낙원이 되요. 홍천은 어떤가요. 거기도 새도 있고, 물살이도 있고, 삵도 있고, 멧돼지고 살지요?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만, 그 친구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해요. 동지들이 대변인이고 증인이지요. 가끔은 달을 보고 전국에 흩어진 생명의 편에선 동지들을 생각합니다. 같은 달을 보고 기도합니다. 동지들이 건강하기를, 그리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들을 결국 지키기를. 여기 금강, 거기 홍천 우리가 이기고 이 싸움이 마쳐지면, 좋은 날 만나서 잔치를 벌이지요. 우리 힘냅시다. 투쟁. (금강 세종보 농성장에서 나귀도훈 님)
“풍천리 주민들과 밀양 주민들은 핵발전소라는 공통의 괴물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 초고압 송전탑이 필요하고 핵발전소에서 만든 남아도는 전기를 처리하기 위한 양수 발전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냥 핵 전소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밀양에서 벌어진 일들이 과거 핵발전소 건설 지역에서 똑같이 지 벌어졌었고 그리고 지금 홍천과 서해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작고 힘없는 말들이 고통 받아야 할까요? 반대라도 하면 이기주의자라 낙인찍으며 국익을 해치는 자라 매도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망쳤습니까? 정작 생명이 깃들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과 산을 해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오늘도 마을을 지키고 산을 지키고 나아가 정직한 마음들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뽑힐 송전탑이다. 언젠가는 없어질 핵발전소라고 되새기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밀양 어르신들은 종종 홍천을 다녀왔을 때를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종종 들려오는 홍천의 소식을 소식에도 함께 기뻐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함께 속상해하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홍천과 밀양이 함께 이어져 있다는 사실 많은 사람 많은 이들이 홍천 주민들의 싸움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 없어질 양수발전소다.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면 처음부터 안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우리는 땅을 지키고 마을을 지켜낼 것입니다. 땅이 타들어가는 혹한 폭염에도 오늘도 거리에선 풍천리 주민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허순이, 이창호 님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곧 만나러 갈게요. (밀양청도송전탑반대대책위)
이창후: 감사드립니다. 멀리서나마 저희들을 이렇게 응원해 주시니 저희도 열심히 없어지는 그날까지 싸우겠습니다.
허순이: 가슴이 뭉클하네요. 여러 군데를 다녀봤어요. 집회 현장에도 가보고 그랬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고통 받고 옳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가락질을 당하더라고요. 우리는 정말 옳은 일이에요. 남들은 이렇게 용기가 없어서 못 해요. 우리는 용기 있는 자거든요. 힘내시고요. 정말 바르게 살고, 옳은 길로 가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막아내는 건데 우리는 정당한 일을 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니까 끝까지 정말 기운 잃지 마시고 함께 같이는 못 있어도 마음은 늘 같아요. 똑같아요. 항상 다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응원 받고 있고요. 파이팅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