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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전환의 이정표, 탈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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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의 경우 선량이 높아지더라도 누군가는 남아서 사고 대응을 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누구냐는 무거운 질문을 이 원전사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Created
2025/08/18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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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왜원전을멈추지않는가?
후쿠시마원전사고
아오키미키
후쿠시마

[일본은 왜 원전을 멈추지 않는가?]낭독(3)

낭독: 청년기후긴급행동 이은호 활동가
한 20대 도쿄전력 남성 직원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제2원전으로 대피한 후 귀가 지시를 받고 한번 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3월 하순이 되어서 후루시마 제1원전으로 복귀하라는 연락을 도쿄전력으로부터 받았다. 어머니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20년 이상 내가 살던 고향이 입을 피해를 어떻게든 최소화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 향했다. 현장에 가서 작업원이 입은 타이벡 방호복이나 방수복을 벗기는 일이나 기기 스위치를 조작하는 일을 했다.
남성 직원 2명이 행방불명되었다. 원전이 있는 후타바군 출신 고쿠보 가즈히코씨와 아오모리현 무츠시 출신 데라시마 요시키씨다. 두 사람은 남성이 지시 받아서 터빈 건물 내에 들어갔을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터빈 건물에 들어 간 조에 속해 있었다. 그들이 간 곳은 4호기였다. 그런데 1,3, 4호기가 폭발하고 방사선량이 높아져서 잠수부들의 수사가 늦어졌다.
3월 30일 두 사람은 4호기 터빈 건물 지하에서 죽은 채로 발견 되었다. 사인은 다발성 외상으로 인한 출혈성 쇼크였다. 3, 4호기 방수구는 바다에 가깝고 소파블록도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이 건물 지하에 들어갔을 때 쓰나미로 들어온 해수가 방수구에서 급격히 역류한 것으로 보인다. 데라시마씨는 3월 11일 지진 직후 집으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와 통화했다. ”여기는 괜찮아. 집은 괜찮았어? 발전소는 잖아. 움직이고 있는 전원도 있어.“라고 말하며 그는 오히려 걱정하는 가족을 활기찬 목소리로 격려했다고 한다. 이 전화를 한 후 데라시마 씨는 건물에 들어가 쓰나미에 휩쓸렸다.
남성 직원은 311 이후 날들을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될 줄 생각도 못했어요.“
어릴 때부터 원전홍보관으로 가면 원전은 안전하다고 배웠다. 반드시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폭발이 잇따랐다.
”바다 근처에 집이 있는 사람은 모두 걱정되어서 집으로 돌아 갔고 일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협력회사도 없고 사람이 부족하다는 건 분명했죠. 그러니까 스스로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만일의 경우 선량이 높아지더라도 누군가는 남아서 사고 대응을 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누구냐는 무거운 질문을 이 원전사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회사는 이익, 이익, 이익입니다. 이런 위험한 것을 만들어 놓고 말입니다. 회사에 원자력과 화력에 관한 기술 전문가는 있어도 지진과 쓰나미 연구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성 직원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작업을 하는 4개월 동안 총 80밀리 시버트 이상을 피폭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통상적으로 입었던 연간 피폭량의 약 26배였다. 게다가 선량계가 쓰나미로 유실되는 바람에 선량계 착용 없이 일했기 때문에 사고 직후 피폭 선량은 측정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80밀리시버트는 어디까지나 추계이다. 3월 말까지 약 3,000명이 선량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일했다. 게다가 도쿄전력은 작업반 대표자에게만 APD(경보음이 울리는 개인 선량계)를 휴대하게 했고 그 피폭선량을 작업반 전체 피폭 기록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대표자와 10m이상 떨어져서 작업했다는 증언도 있어 피폭 기록이 불확실한 사람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 직원은 “반장은 방사선량이 낮은 곳에 있었어요. 반장선량을 반 전체 인원의 피폭선량으로 계산하면 그 수치는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이런 방식은 문제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비탄에 잠긴다.
“나중에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은데 걱정이에요. 회사에 전근을 요청했지만 아직 100밀리시버트 까지 피폭하지 않았다라며 거부당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중입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작업을 통해 피폭한 탓에 암에 걸 ”린 사람 중 산재가 인정된 사람은 2023년 10월까지 총 11명이다. 산재가 인정된 사례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원전에서 작업한 후 암이 발병한 사람의 얘기를 여러명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유족들에게 들은 얘기만 해도 사고 직후 긴급 작업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 들어간 2명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