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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전환의 이정표, 탈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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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과 부모 세대들은 돌아와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안 돼요. 돌아오라고 해도 안 되고요”

Created
2025/08/18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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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미디어
일본은왜원전을멈추지않는가?
후쿠시마원전사고
아오키미키
후쿠시마

[일본은 왜 원전을 멈추지 않는가?] 낭독(1)

낭독: 맨발동무도서관 백복주 관장
”우리 집 샘물은 아주 깨끗했어요. 둘째 딸이 도롱뇽 알을 가져 와서 부화시키는 탐구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도롱뇽은 깨끗한 자 연에서만 살 수 있잖아요.“ 덤불길을 더 가니 기와지붕 단층 주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코니와 현관 하부에 주황색 널빤지가 쳐져 있다. 멧돼지가 침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중에 아들 가족들과 함께 살려고 2층 집으로 증축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원전사고 후 니가타 대학 교수가 와서 집안 방사선량을 측정하더니 사람이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 집은 해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젠 살 수 없는 집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멧돼지가 휘젓고 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사냥꾼인 인간이 없어졌기 때문에 마을에는 멧돼지가 대량 번식해 가옥을 해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부근에서도 멧돼지 피해를 입은 집을 수없이 봤다. 시바타씨는 여생을 보내려고 지은 집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한다.
“벽을 쓸어버렸네요. 무섭죠. 멧돼지가 다 한 짓이에요. 앞으로 제염작업이 잘 된다면 나도 다시 돌아와 살고 싶지만 산은 제염할 수 없잖아요. 산에서 방사성 물질이 날아와요. 우리들과 부모 세대들은 돌아와 살 수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안 돼요. 돌아오라고 해도 안 되고요. 만약 피난구역이 다 해제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다시 여기서 생활하고 싶지 않아요“
부모님, 시바타 씨 부부, 그리고 장남과 그 가족들.... 그는 그 의 모든 식구가 안심하고 오랫동안 지낼 수 있는 곳을 만들었고 미 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미래는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시바타 씨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회복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살기 위해 66년 된 중고 주택을 사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 도쿄전력이 배상금으로 1인당 월 10만 엔을 주었다. 그러나 시바타 씨 부모와 본인, 아내의 배상금만으로는 생활이 부족했다. 결국 아이들의 배상금도 주택 자금으로 댔다. 그런데 도쿄전력 지원금은 2018년 3월에 끝났다. 저축은 바닥이 보이고 시바타씨는 아픈 몸으로 다시 일해야만 했다. 난청과 현기증이 여전했지만 건설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50대라는 나이 탓에 정규직 직장은 구할수가 없었다. 피난 때문에 직장과 경력을 잃었다. 새 직장 을 얻기에는 시바타 씨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시바타씨가 배상금을 받는 것에 대해 아르바이트 동료들은 “매달 10만 엔이나 받아서 좋겠다”고 조롱하듯 몇 번이나 말했다. 한턱내라는 소리도 들었다. 고향의 일상생활은 돈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그런 말을 해댔다. 이미 배상금 지급 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주변에 말했기 때문에 여전히 그런 말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더 화가 났다. 시바타씨는 참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동료로부터 또 같은 말을 들었다. 기회라고 생각해 시바나씨는 말했다.
“나, 너에게 10만 엔 다 줄게. 그러니 일 그만두고 집 버리고 전혀 모르는 곳에 가서 생활해봐. 그러면 알 거야. 10만 엔으로 생활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한번 해 봐!” 동료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직장까지도 잃으면 어렵겠지“라 고 중얼거렸다. 그 이후 동료들은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쓰시마는 좋았죠. 이웃과는 말하자면 ’된장국이 식지 않는 거리‘였고 ’안녕‘하며 인사하고 자연스럽 게 현관문 열고 들어가는 그런 관계였어요. 이제는 두 번 다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은 쓰시마 사람들을 만나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가야죠. 둘도 없는 소중한 생활을 잃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