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편에 선 당신에게 _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생명들, 그 곁에 선 사람들의 기록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생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난개발과 반환경적인 정책으로 인해 갯벌과 강, 산과 숲, 마을의 터전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파괴의 현장마다, 이를 막아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들, 기자회견장에, 바닷가에, 산길 어귀에 자신의 하루를 내어놓은 사람들—우리는 그들을 ‘생명의 편에 선 사람들’이라 부릅니다. 새알미디어의 <생명의 편에 선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들과 마음으로 연대하고 싶은 ‘또 다른 당신’과 연결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새만금과 가덕도에서 신공항 건설을 막고, 지리산에서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며, 제주의 물과 노자산의 팔색조를 지키기 위해 골프장 건설을 저지하는 싸움. 산업폐기물처리장, 송전탑,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막기 위한 싸움. 이들은 모두 ‘지금, 여기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생명의 편에 선 당신에게> 네 번째 만남은 월성핵발전소 인접지역에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오랜 세월 농성을 이어온 주민 황분희(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 부위원장)님과 주민들의 농성을 한결같이 지원해온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국장입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살아 온 경주 양남면과 주변 마을들은 월성핵발전소가 건설되고 나서부터 건강권과 생존권을 끊임없이 위협받아 왔습니다. 핵발전소 인접 지역 주민들은 일상적으로 방사능의 위협 속에 살면서 갑상선암을 비롯한 각종 건강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이자 고향인 곳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안전한 삶을 위해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지난 10년 넘는 세월 동안 이어온 농성의 이야기, 핵발전에 맞서 새로운 싸움을 이어갈 다짐의 이야기를 새알미디어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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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숲과나눔> 풀씨 12기 사업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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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상홍 국장님은 처음 핵발전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상홍: 예전에 방패장 반대 투쟁할 때, 아마 2005년이었을거에요. 그때 같이 한 기억이 있고 그 이후에는 제가 환경운동을 안 했기 때문에 관심을 놓고 있다가 2010년도에 경주환경운동연합에 오면서 다시 핵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나면서부터죠. 당시에 일본에 가서 한 일주일간 후쿠시마 인근 조사 활동을 하면서 핵발전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라는 걸 좀 각인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탈핵 운동 시작하게 됐습니다.
Q. 경주 지역에 핵발전소가 굉장히 밀집되어 있고 노후 핵발전소 문제도 있잖아요. 경주 지역이 가진 핵발전소와 관련된 문제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상홍: 제일 큰 문제는 월성 2,3,4호기가 수명이 다 되었어요. 2026년 27년 29년 이렇게 각각 수명이 마감이 돼요. 저희들은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 당연히 수명연장을 안 할 줄 알았는데 지금 분위기가 수명연장을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많이 나와서 긴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수명 연장 문제가 제일 큰 이슈라고 볼 수가 있고요. 추가해서 이주 대책위가 지금 11년째 농성을 하고 있는데 이주와 관련된 대안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좀 막막한 그런 지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고준위 핵폐기물 절반 이상이 경주에 있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2022년도에 맥스터(고준위핵폐기물 건식저장시설) 추가건설 반대 투쟁으로 한 1년 정도 지역사회가 엄청 시끄러웠던 상황이었고요. 결국 맥스터는 추가 건설이 되었는데 핵폐기물 문제가 지금 잊혀져 있긴 하지만 들여다보면 제일 큰 문제 중에 하나인 거죠.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경주지역은 핵발전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상홍 국장은 핵산업을 둘러싼 형식적인 주민 참여 절차와 법적 한계에 문제를 제기하며, 실질적인 결정권이 주민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Q. 최근에 산업부에서 고준위특별법 시행령 발효를 앞두고 핵폐기물 처분 관리 방안 관련해서 설명회 했잖아요? 경주지역 설명회에 국장님도 참석하셨던 걸로 아는데 그 당시 가보셨더니 어떠셨나요?
이상홍: 고준위특별법이 9월 26일 시행이 되는데 그 시행을 앞두고 산자부에서 시행령 초안 마련을 해서 지금 핵발전소 지역을 돌면서 주민 설명회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경주에도 7월 30일 날 주민 설명회를 했는데 제가 그 현장에 가보니까 제대로 된 설명회가 아니더라고요. 상당히 형식적으로 설명회를 하고 있고 한 3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오셨는데 시행령 내용이나 특별법에 대해서 이렇게 크게 숙지를 하고 오신 건 아니더라고요. 주민들은 주로 보상금이 어떻게 되는지, 지역 지원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되게 많았었고 저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얘기를 했는데 제일 크게 문제 삼은 것이 맥스터와 같은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시설을 추가로 건설하는 데 있어서 왜 주민 의견 수렴이 반경 5km인가에 대한 것이었고 그때 국장이 설명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시민사회단체에서 30km를 주장을 하는데 산자부에서는 주민들을 위해서 반경 5km로 밀어붙이고 있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어요.그래서 제가 많이 화가 나서 국장한테 따지고 하니까 뭐 사과는 하더라고요. 실수했다, 말을 잘못했다고는 하던데... 그때 산자부에 제가 얘기를 한 것이 “정부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하는 발언이 사실은 지역의 갈등을 부추기는 발언이다.” 라고 지적을 했던 거고 그리고 주민 의견 수렴 범위가 넓어지는 게 이 지역이 피해 본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도저히 납득이 안 되었던 거죠. 보니까 주민들의 보상 범위와 주민 의견 수렴 범위를 똑같이 해놨더라고요. 그래서 “보상 범위는 반경 5km로 하시라 하지만 의견 수렴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으로 해야 된다. 지금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부지 내 저장 시설은 관계시설이고 원자력안전법상의 관계시설은 통상적으로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이 의견 수렴 범위이다. 그것을 준용하면 되는 거지 왜 별도의 의견 수렴 방안을 시행령에서 만들려고 하냐. 그냥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으로 하면 된다.”고 얘기를 했던 것이고 뭐 알았다라고 하던데 분위기상 반영은 전혀 안 될 것 같아 보였어요.
Q.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으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상홍: 2011년도에 후쿠시마 핵사고가 났을 때 그 당시 간나오토 총리가 반경 250킬로미터에 4천만 명의 시민들 피난 대책까지를 마련했다고 하거든요. 4천만 명에 대한 피난 계획을 고민했던 이유가 그 당시 후쿠시마 4호기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폭발 사고를 예상을 했던 거죠. 거기에서 사고가 나면 어마어마한 방사능이 나오기 때문에 반경 250킬로미터까지 피난 계획을 세웠던 것인데 다행히 그 저장수조의 안전이 냉각이 확보되면서 피난은 반경 20킬로미터까지 했던 거에요. 그런데 지금 현재 정부에서 말하는 부지 내 저장 시설이 사용후핵연료(고준위핵폐기물)를 보관하는 시설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의견 수렴을 할 때는 혹시라도 이곳에서 사고가 났을 때 피해를 볼 수 있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으로 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뭐 100km, 200km 주장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방사선비상계획구역 해봤자 고작 30km이고, 또 법에도 그렇게 하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거죠. 평상시 운영함에 있어 가지고 주변 지역의 피해에 대한 보상은 반경 5킬로까지 하더라도 이 시설을 최초 건설함에 있어서는 혹시라도 사고가 났을 때의 피해 반경을 고려해서 폭넓은 의견 수렴을 해야 된다고 저희들이 요구를 하고 있는 거죠. 게다가 경주는 중저준위방폐장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은 건설할 수 없다고 되어 있어요. 그게 방폐장 특별법 18조인데 그래서 3년 전에 맥스터를 추가 건설하려고 할 때 경주 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가 행정 소송을 했어요. 방폐장 특별법 18조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판사가 건설할 수 있다고 판결을 해버렸어요. 그때 판사가 그렇게 판결한 근거가 ‘맥스터는 방폐장 특별법 18조에서 이야기하는 관련 시설이 아니라, 원자력안전법에서 이야기하는 원자로 안전과 관계된 시설이다’라고 법적인 해석을 내린 거에요. 그러면 지금 현재는 관계 시설인 것이죠. 저희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이것이 관계 시설이라고 한다라면 더더욱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적용을 해야 되는 거죠.
Q. 주민 의견 수렴과 관련해서 수렴 범위의 거리적인 문제도 있지만 다른 문제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이상홍: 의견 수렴을 사실상 안 하죠 안 하죠. 그냥 산자부나 한수원에서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시설 지금으로 치면 이제 부지 내 저장 시설이라거나, 또 신규 원전 부지같은 것들을 자기들의 계획을 확정을 하면 그걸 밀어붙이지 뭐 주민 의견이나 이런 걸 수렴을 해서 계획을 변경한 사례를 저희들이 본 적이 없죠. 그래서 상당히 요식 행위로 흐르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거고 그래서 이제 저희들의 주장은 의견 수렴 범위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고 실질적인 결정권을 주민들한테 줘야 한다는 거에요. 예를 들면 3년 전에 이제 경주에서 맥스터를 추가 건설할 때 그때는 최소한 공론화라도 했었거든요. 물론 그 공론화 문제는 많았지만 어쨌든 경주시민들이 참여해서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틀을 열어놓기는 했어요. 그런데 지금 현재 고준위특별법에 보면 그러한 절차마저 없애버렸어요. 그냥 공청회 정도로 해서 갈음하겠다는 것인데 공청회 우리 많이 해봤잖아요. 그냥 한 두 번 하고나면 의견 수렴이 끝나는 절차고 자기들이 기존에 확정한 사업을 그냥 밀어붙이는 절차적인 과정밖에 안 되는 거죠. 그 과정에서 보상 문제라든가 그러한 몇몇 것들을 받아들이는 거지 사업 자체가 수정되는 거는 본 적이 없는 거죠. 그래서 저희들은 특별법대로 가서도 안 되겠지만 기왕에 그렇게 간다면 최소한 지역 주민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을 줘야지 지금의 어떤 설명회나 공청회는 말 그대로 수용성만을 높이는 과정인 거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주민들이 결정할 수 있게 해줘야 된다는 요구를 하는 겁니다.
Q.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이나 핵폐기물과 관련한 문제가 여러 갈등이 있는가 한편 또 오랜 시간 동안 이주 대책을 요구하시면서 싸워온 주민 분들도 계신 건데 국장님은 월성원전 인접 지역 이주 대책위 주민들과는 언제부터 연대하셨나요?
이상홍: 주민들이 2014년 8월 25일 날 천막 농성을 시작을 했어요. 이제 11년이 넘었는데 그때 농성하기 2-3일 전에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경주환경운동연합이죠? 우리 나아리 주민들이 농성을 하려고 하는데 와서 좀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전화를 받고 뭘 도와야 될지는 몰랐지만 현장에 가니까 처음에 컨테이너를 치고 계시더라구요. 처음에는 컨테이너를 쳐놓고 농성을 시작했고 한 달쯤 지났나 컨테이너가 여러 문제가 있다고 해서 컨테이너를 철거하고 천막을 쳤는데 그렇게 왕래가 된 게 그냥 11년이라는 시간이 쭉 갔어요.
Q. 주민들과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싸워 오시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있으셨다면 무엇이었나요?
이상홍: 사실 오늘 제2 농성장을 꾸린 거잖아요. 원래 있던 농성장이 11년 만에 철거되고 주민 집 마당에 제2 농성장을 꾸렸는데 그렇게 된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실은 이 나아리라는 곳에서 주민들이 11년째 농성을 하고 있는데 마을 내에서 고립 되신 거죠. 정당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주민들 내에서 결과적으로 지지받지 못하고 고립되고 하면서 농성장도 철거된 거라고 생각해요. 철거는 한수원이 한 거지만 그 배경에는 주민들 간의 관계가 있는 거죠. 그런 지점들이 솔직히 제일 힘들어요. 같이 생활권 내에 있는 주민들 내에서 배척당하고 고립되고 하는 것들을 이제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요.
Q. 저희가 생명편 촬영하는 곳들마다 다 이제 지역의 주민 간의 갈등이 가장 큰 어려움이신거 같더라구요.
이상홍: 지금도 저 현장에 가면 월성원전 앞에 이 마을 주민회에서 붙여놓은 현수막들이 있는데요. 월성원전 활성화를 왜 주민들이 주장하는지 모르겠지만 지역 경제 활성화, 월성 원전 활성화를 위해서 농성을 멈춰줬으면 좋겠다는 현수막들이 붙어 있어요.
Q. 지금 이주 대책위에는 주민 몇 분 정도가 계세요?
이상홍: 한 다섯 분 정도요. 처음에는 한 72가구 정도 됐어요.
Q. 그럼 다른 주민들은 한수원으로부터 보상을 받거나 합의를 하신건가요?
이상홍: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고 이 지역이 한수원의 경제권 안에 포함돼 있는 거죠. 여기서 장사하시는 분들도 한수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제일 큰 고객이기 때문에 한수원에 이렇게 맞서서 장사를 하기가 힘들죠. 대부분 이제 상업에 계시니까요. 그리고 마을에 여러 가지 지원금들이 한수원에서 나오잖아요. 한수원에 맞서거나 하면 그런 지원을 받기 힘들고 하니까 한 한 11년째 쭉 농성을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지쳐서 떨어져 나가신 거죠. 11년 동안 어떤 한수원과의 합의나 보상은 전혀 없어요.
Q. 주민들이 함께 하시다가 몇몇 안 남았다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은 합의를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잖아요?
이상홍: 그런거 전혀 아니고 그런 게 있어요. 솔직히 한수원이라는 자체도 어마어마한 큰 공기업인데 거기다가 또 원전이 직접 여기에 있는 거잖아요. 6기가 있는 것인데 거의 불가항력인거죠.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한 15년간 탈핵 활동을 하면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핵발전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시(국가 이념이나 정책의 기본 방침) 같아요. 옛날에 군사 정권 시절에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라고 했잖아요. 그것처럼 핵발전이 대한민국 국시 같아요. ‘맞선다’라는 게 진짜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있는 거죠. 여기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나마 초창기에 한 72가구가 모이고 하니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에 위험성도 많이 느끼고 하니까 그때는 뭉쳐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했던 거죠. 이후에 한두 가구 이렇게 떨어져 나가고 하니까 많이 힘이 빠지시고 하니까 뭐 포기를 하시는 거죠. 어떻게 보면 남아 계시는 분 다섯 가족이 정말 대단하신 거죠. 특히 황분희 부위원장님을 비롯해서…
Q. 연대하시면서 그런 어려움도 있으셨겠지만 기쁘거나 보람되거나 하는 순간들도 있으셨나요?
이상홍: 2015년도에 저희들이 월성 1호기 폐쇄 투쟁 한창 할 때 경주시민 1만 명이 한지에다가 붓글씨로 서명을 하는 만인소 작업을 했어요. 그때 이주 대책위 분들도 되게 열심히 하셨는데 만인소를 다 만들고 나서 한 9월경인가 저희들이 서울 광화문에 가서 그걸 쫙 펼치고 하얀 상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했어요. 관도 들고 갔었죠. 박근혜 정부 때였죠. 기자회견하고 청와대에 만인소 사본을 전달을 하고 주민들하고 경복궁으로 놀러 갔어요. 그때 주민들 표정이 되게 좋았어요. 즐거워 하시고 밝고 좋았고... 또 버스 타고 내려오면서 노래 부르고 놀고... 그때 주민들이 되게 행복해 보였어요.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한수원과 법원은 주민 건강피해에 최소한의 책임을 외면했다
황분희 부위원장은 13년 전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고, 남편 역시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격과 겪고 있다. 마을 곳곳에서 유사한 질환이 이어지자, 주민들은 핵발전소 방사능의 연관성을 의심하며 공동소송에 나섰다. 이상홍 국장은 주민건강피해가 각종 통계와 연구로 증명되고 있다고 말한다.
Q. 재산권에 대한 문제로 이주 대책을 요구하시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핵발전소 근처에 산다는 게 건강 피해의 문제라든지 안전의 문제가 있잖아요. 주민들의 건강 피해, 갑상선암 공동 소송도 여전히 진행중인데 주민들의 건강 피해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요?
이상홍: 주민들의 건강 문제는 여러 통계에서는 나오는 것 같아요. 과거에 서울대학교 안윤옥 교수팀에서 한 역학조사에서도 반경 5km 내에 주민들, 특히 여성들의 갑상선암이 2.5배 많다는 조사는 팩트잖아요. (관련기사: 원전주변 여성 갑상샘암 2.5배 높아) 그것에 근거해서 과거에 균도네 소송이 1심에서 승소한 바도 있는 것이고 그리고 최근에는 2023년 환경부에서 월성원전 인접지역 주민 건강 조사를 하고 발표한 내용이 있는 거잖아요. 그 당시에 환경부는 월성 원전 주변 지역의 주민들의 암 발생이 전국 평균보다 오히려 낮다고 발표했는데 저희들이 그 데이터를 다시 정리를 해 보니까 실질적으로 반경 5km 내에 있는 주민들의 암 발생이 반경 5km에서 20km 사이에 있는 주민들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명확하게 그런 데이터가 나오는 것이고 그 당시에 환경부의 자료를 보면은 주민들의 피폭량이 되게 극미하다고 나와 있거든요. 일반인의 방사선피폭선량을 연간 1밀리시버트가 기준이라고 보통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것의 300분의 1에 불과한 피폭량이라고 환경부에서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여러 가지 염색체 이상이나 혈액 조사상의 호르몬 수치나 이런 것들을 보면 삼중수소에 피폭 되는 양만큼 수치가 더 안 좋아요. 극미량의 방사능이지만 주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상하게 환경부에서는 별 문제없는 것으로 발표를 해버렸어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환경부 장관도 바뀌었다라고 하는데 그때 그 조사 결과들을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확한 통계 자료는 아니지만 주민들의 암 소식을 심상치 않게 많이 듣게 돼요. 그것도 많이 발병하지 않는 췌장암이나 그런 병들이 작년에도 확인된 것만 5건 정도 돼요. 여기 사시는 주민들이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투병하고 있고 그런 소식들을 듣게 되죠.
Q. 건강 피해를 입으시는 분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런 주민들의 건강 피해 문제에 대해서 주민들의 반응은 어때요?
이상홍: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때 환경부 조사하고 나서 특히 이주 대책위, 또 양남면 차원에서도 관련 현수막을 많이 걸고 했어요. 그때 반짝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 이후로 또 조용한 상황이고... 오히려 주민들은 그런 문제를 좀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지역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라는 이유로
Q. 지금 갑상선암공동소송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죠?
이상홍: 저는 왜 법원에서 주민들의 이 피해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역학조사 결과로는 명확하게 데이터가 나오는 것이거든요. 역학조사 결과를 법원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그것이 좀 이해가 안 되는 측면들이 있어요. 저희들이 소송을 한 게 1인당 1,500만 원 배상을 요구한 거잖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1500만 원이 되게 웃긴 거잖아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길 가다가 고의로 누가 당신의 팔을 부러뜨리면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지 배상이 되겠는가. 최소 1억 이상 받아야 되지 않겠어요? 팔이 하나 부러져도 사고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그랬다라면 말이에요. 근데 지금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의해서 암에 걸리고 돌아가실 수도 있고, 또 갑상선 수술을 하더라도 제거 수술을 하게 되면 평생을 이제 호르몬제를 먹으면서 불편하게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건데 그에 대한 보상이나 배상을 얼마를 해야 되겠어요? 수억 원을 해도 부족한 거죠. 암 발생 원인이 다양할 수가 있지만 원전 주변에 살면서 특히나 갑상선암에 걸린다는 것은 방사능 피해를 우리가 무시하고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는 거에요. 1,500만 원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수원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요구하는 거예요. 전적으로 너희 책임이라는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한수원 책임이면 10억을 줘도 이게 보상이 되겠어요? 생명과 관련된 건데 안 되는 거죠. 하지만 반경 5km나 10km에 있는 주민들이 이렇게 많이 암에 걸리는 것에 한수원의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최소한의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이거든요. 그것마저 법원에서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주민들에 대한 이 1,500만 원 배상 판결을 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양심을 구하는 판결인 거지, 뭔가 큰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 아니에요. 이 정도는 우리 사회가, 법원이 인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한수원도 쿨하게 인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비싼 로펌을 사서 방어할 게 아니라 최소한 그 정도는 도의적으로 우리의 책임성도 일부 있다고 원전을 운영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다고 인정하는게 맞잖아요.
Q. 한수원은 그걸 왜 인정 안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상홍: 원전은 무결하니까... 원전은 안전하니까라는 신화를 계속 쓰고 싶은 거겠죠. 2심 고법에서도 패소를 하고 대법에 항고한지 1년이 넘었죠. 그런데 대법에서 전혀 진행이 안 되고 있네요. 대법에서는 보통 재판을 안 하잖아요. 일반적으로는 변론을 안 하는데 되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더러 변론을 하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변호사님께서 고법에서 제대로 다투어 보지 못했다고, 1심에서 패소 판결한 판사가 고법에 와서 또 판결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저희들이 변론권을 거의 도둑맞았다고 보고 있는 것이고요. 지금 618명이 직접적인 피해자고 그 가족까지 2천 명이 넘는데 실제로는 더 있을 거잖아요. 사회적으로 되게 중요한 재판이니까 공개변론을 요청하는 777명의 탄원을 조직해서 제출하기도 했어요. 저희들이 추가적으로 제시할 자료도 있고 할 말이 더 있다고요. 그렇게 대법에 요청을 했는데 소식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 경주 지역에는 이주대책위 문제라든지 노후핵발전소 수명 연장, 핵폐기물 등 핵 발전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들이 있는데 15년간 탈핵 운동 해오시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것이었나요?
이상홍: 갈수록 탈핵 운동이 되게 왜소해지는 것 같아요. 후쿠시마 핵사고 났을 때 어마어마하게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고 그리고 경주는 2016년도 9월 12일 5.8의 지진이 있었잖아요. 지진 나면서 또 시민들이 어마어마하게 핵 발전에 대한 걱정이 많았어요. 한 10여 년 가까이 흘러가면서 많이 잊혀지는 것 같아요. 근데 이건 잊혀지면 안 되는 거잖아요. 세월호를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후쿠시마 사고 포함해서 핵 사고의 위험성들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그런 게 잊혀지는 게 좀 걱정스럽고 잊혀 지지 않게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저희들이 해야 될 일인데 힘에 좀 많이 붙이는 것 같아요.
Q.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로 크게 변화는 없기도 하지만... 정부 정책이나 한수원, 그러니까 방사능의 발생 원인자이자 핵 발전의 최정점에 있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상홍: 솔직히 뭐 한수원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못 해봤어요. 좀 갑갑한데 안전 신화에 너무 젖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진짜 많이 들어요. 한수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봐도 뭐 단순히 어떤 이권을 떠나서 한국 원전은 안전하다는 어떤 걸 신앙처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오히려 두렵죠. 정부는 그냥 핵산업계 인질로 잡혀 있는 것 같구요. 흔히들 그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핵산업과 민주주의가 함께 갈 수 없다고요. 우리가 지난 5월에 대만에서 열린 반핵아시아포럼도 다녀왔는데요. 7월 15일 대만이 마지막 핵발전소 문을 닫았어요. 대만의 활동가들이 대만의 민주화에 대해서 참 많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대만의 환경 운동은 대만의 민주화 운동과 함께해 왔다고 하고 탈핵이 가능했던 것도 대만의 민주화 운동 역량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아직 민주화가 안 된게 아닐까. 우리가 'K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대통령을 두 번이나 끌어내렸지만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이 무감각하고 자기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개입하지 못하고 여전히 산업계 엘리트들이 에너지 문제를 좌우하고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 아직 민주화 안 되었구나. 민주주의의 수준이 아직 낮구나.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가 아직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바다와 산이 좋아 이주했던 곳, 나아리_핵발전소는 마을을 갈라 놓았다
바다와 산이 함께한 마을, 인심 좋은 이웃들, 전형적인 시골 동네였던 곳이 핵발전소로 인해 어느새 갈등의 한복판이 됐다. 핵발전소는 삶과 마을 공동체를 모두 흔들어 놓았다.
Q. 황분희 부위원장님은 이 마을에서 얼마나 사셨어요?
황분희: 저는 월성 원전 최인근 지역 이주대책위 부위원장 황분희입니다. 이 지역에서 38년 정도 살았어요. 원래 울산에 살았었는데 38년 전에 이사 왔을 때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어. 정말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너무 좋았지. 우리 아저씨가 건강이 약간 안 좋아서 요양차 여기 들어왔어. 우리가 여기 들어올 때는 한 3년만 살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여기에 들어왔는데 지금 3년이 이렇게 오래 됐지. 살기가 너무 좋더라고.
Q. 처음 여기에 이사해서 와서 사셨을 때랑 지금 어떤 게 가장 많이 변했어요?
황분희: 변한 건 너무 많지. 내가 38년 전에 들어올 때는 이곳에 뭐 원자력이 있거나 이런 걸 몰랐고 아무것도 몰랐어. 아 참 너무 좋다. 바다로 나가고 싶으면 금방 바다에 나갈 수 있고 산에 가고 싶으면 바로 뒤가 산이고 이래서 너무 좋다했어.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또 동네 사람들도 너무 좋더라고. 사람들이 순수하고 이웃이 같이 음식도 나눠 먹고 한 집 식구같이 서로 아껴주고 서로 위해주고 이러니까 정말 이게 시골 인심이구나 싶은데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던 그대로의 그걸 느낄 수가 있었다고. 그래서 이곳에서 살아도 되겠다. 살자. 그래서 살게 된 거지. 근래에 와서는 정말 많은 것이 변했지. 처음에는 그렇게 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은 원자력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처음보다는 완전히 180도 다른 지역이 됐어. 사람 인심도 팍팍해졌고 핵발전소가 있다보니 이제 돈이 동네에 나오게 되다 보니까 그 돈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돈에 얽매여서 마음이 옛날 그 마음이 없어지더라고. 순수한 그 마음들이 없어지고 그래서 너무 많이 변했지 나 역시 많이 변했지만 동네도 많이 변했어. 여기서 살지 못하겠다 하는 사람과 또 친원전, 무조건 원전이 좋다. 원전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이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하고 갈등이 있지. 한수원이 그렇게 만들어. 친원전, 반원전을 두고 한 동네가 뭉치지 못하게 반을 항상 갈라놓는 거야.
Q. 여기서 사시면서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의 문제, 그로 인한 건강 문제를 실감하신 건 언제부터세요?
황분희: 13년 전에 갑상선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부모도 형제 누구도 우리는 그런 암을 앓은 사람이 없는데 왜 이러지? 했지만 그때는 또 몰랐으니까 뭐 그냥 암인가 보다하고 수술하고 그랬어.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부터 원자로에서 이제 방사능이 늘 나온다. 방사능이 몸속에 들어오면 암을 일으킬 수도 있고 유전자도 파괴하고 막 이런 것들을 알게 되는 거야.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지만 일본 후쿠시마 터지고 나고부터는 후쿠시마를 보니 너무 겁나는 거야. 원자력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우리가 여기 그냥 살 때는 한 25년 동안에는 그냥 원자력이 다 좋은 건 줄 알았어. 쟤들이(한수원이) 항상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그냥 깨끗하고 전기도 싸게 쓸 수 있고 뭐 다 좋은 것만 얘기하니까. 정부가 설마 사람 속이겠느냐 사람을 뭐 어떻게 하겠냐 이래서 그냥 믿고 하자는 대로 다 하고 산거야. 근데 이제 일본 후쿠시마를 보면서 이제 느낀 게 많았어. 우리가 뭔가를 잘 모르고 있었구나. 한수원은 사고가 나지 않으면 절대 방사능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어. 우리는 그렇게 알고 살았는데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는 여기 중수로(월성핵발전소의 노형)는 늘 방사능이 나온다는 거야. 그러면 내 몸의 병도 원자력으로 해서 생긴 게 아닌가 그래서 그때 공동 소송도 하고 그때부터 의심을 자꾸 하게 되는 거지. 우리가 검사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까 더 상세한 거는... 핵종이 수백 가지가 넘잖아. 그걸 다 할 수는 없고 그냥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삼중수소를 했을 때는 다 피폭이 돼 있었어
Q. 다른 가족분들도 건강 피해가 있는 사례들이 있나요?
황분희: 한 2년 전부터 이제 우리 남편이 그냥 갑자기 살이 한 10킬로 정도 빠지는 거야. 그래서 병원에 이제 갔더니만 갑상선 저하증이라는 거야. 그래서 그거를 몇 년을 두고 계속 치료를 하고 약을 먹고 수치를 조정하고 있는 거야. 그런 걸 모르고 이제 그냥 뒀더라면 또 뭐 안 좋은 병일 수도 있었겠지. 우리도 뭐 그냥 쉽게 넘기고 했으니까... 암이 올 수도 있고... 그래서 원자력으로부터 나오는 방사능이 주민들한테 피해를 주고 있구나 생각이 되니까 마을에 보면 갑상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사람들이 얘기 들어보면 다 갑상선 치료하고 약 먹고 있다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더라고.
Q. 갑상선암 공동 소송 진행을 하고 있잖아요. 주민들 중에 갑상선암에 걸리신 분들도 많고 하셨다고 했는데 그 공동 소송에 참여는 어떻게 하시게 되셨어요?
황분희: 공동소송 참여는 부산의 균도 엄마가 갑상선암으로 한수원 상대로 소송해서 그때 1차 재판에 있어서 승소를 한 거야. 원자력으로부터 (나오는 방사능으로 인해) 암이 될 수 있다는 거였어. 그래서 우리도 하자 해서 이제 15km 내에 있는 사람들을 갑상선 암 환자들을 모았어. 공동 소송으로 대응한 거지. 우리만 한 게 아니고 전국이 다 했지. 핵발전소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다 했어. 물론 안 한 사람도 있어. 우리 동네도 안 한 사람도 있어. 소송해가지고 지면 소송과정에 대한 손해 배상을 해야 된다 이러니까 시골 사람들이 소송에 지면 또 손해배상까지 줘야 한다고 하니 안 하겠다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 우리도 그런 우려를 많이 했고 그랬는데 뭐 지금은 아직까지 판결이 안 났지. 소송비용을 달라 하는지 안 달라지는 모르겠지만...
한수원과 법원은 방사능 피폭이 기준치 이하라며 주민들의 건강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방사능을 발생시킨 기업이 방사능과 건강피해 간의 입증책임을 지지 않고 주민들에게 상관관계를 입증하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Q. 대법원에 지금 상고한 상태잖아요. 2심 재판에서 졌을 때 심정이 어떠셨어요?
황분희: 진실이 너무 안 통한다는 걸 느꼈지. 우리는 시골 사람들이 그냥 거짓 없이 그저 이게 콩이면 콩, 팥이면 팥, 그대로만 우리는 순수하게 그렇게 살았는데 이게 재판을 하면서 보니까 아 이게 정말 진실이 너무 안 통한다. 내가 생각했던 거 하고 우리가 살아온 걸 비춰 봤을 때 맞지 않는다는 거를 분명히 느꼈지. 아니라고 대답(핵발전소의 방사능영향이 아니다라고)할 때는 왜 아닌가도 자기네들이 증명을 해야 되잖아. 증명을 해줘야 되잖아. 사람들을 데려다가 뭐 어떤 정밀 검사를 하든, 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렇게 원자력으로 방사능으로부터 해서 온 병이 아니라는 걸 증명을 해 주든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우리는 정말 진다고는 생각도 안 했어. 그랬는데 재판을 해보니까 정말 이게 아 이게 정말 진실이 이게 제대로 되지 않는구나 우리가 생각했던 거하고 틀리는구나 하는 거를 재판을 몇 번 하면서 많이 느꼈지.
Q. 부위원장님이나 주민들이 겪는 건강 피해가 원전의 방사능으로부터 인한 거라는 확신은 어떻게 가지고 계시는 거예요?
황분희: 자기네는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이하다. 이하라서 괜찮다. 기준치 이하니까 자기는 책임질 수 없다는 걸로 말하지만 전문가들 얘기했잖아. 아무리 저선량이라도 몸속에 들어왔을 때는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얘기를 하거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방사능이 좋은 건 아니잖아. 방사능은 몸속에 들어왔을 때 다 피해를 주잖아. 그런데 괜찮다고 정말 이거를 무엇으로 우리가 증명을 해.. 몇 번을 내부 피폭된 걸 소변 받아가지고 검사도 했고 검사해서 수치가 이렇게 나왔다 하면 또 한수원은 기준치 이하라고 문제없다 얘기하고. 전국적으로 다 자연 방사능이 있고 삼중수소가 다 있다는 거야. 전국적으로 다 있대. 여기 사람들이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도 다 방사능을 갖고 있다는 거야. 딴 곳에도 있는지 없는지 그럼 이제 증명할 길이 없잖아. 이제 그때 EBS방송에서 다큐를 찍으면서 왔을 때 원자력이 있는 동네 아이들 10명, 원자력이 전혀 상관없는 동네 애들 10명을 소변 검사를 해보자. 방사능이 정말 다 똑같이 들어 있는지 해보자 해서 했는데 학교에다가 부탁을 했어. 그런데 다 원자력하고 연관이 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거 못하겠다는 거야. 그러면 10명을 하지 말고 5명을 하자.내가 이곳에 아이들 5명 소변을 받아 모아 줄 테니까 그러면 원자력 없는 곳에 하고 대조를 한번 해보자 이래서 5명으로 축소를 시켰어. 10명을 하려고 하면 조사 경비도 너무 많이 들고 그래서 우리가 대전으로 가지고 가서 검사를 했어. 상대 애들 5명은 서울 불광동 어린이집 애들 소견을 받아 가지고 했는데 그 애들은 삼중수소 하나도 없고 우리 애들만 100% 다 들어 있는 거야. 우리 애들만. 그런 결과를 또 이렇게 했다고 했을 때 기준치하라는 거야. 삼중수소는 나왔지만 그거는 기준치 이하니까 자기들이 책임질 수 없다는 거지.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온 11년의 농성
이주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는 묵살됐고, ‘기준치 이하’와 ‘법이 없다’는 말만 반복됐다. 국책사업과 공기업이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하고 싸워온 세월, 포기하지 않은 주민들이 여전히 싸우고 있다.
Q. 지금 이주 대책 요구하시면서 꽤 오랫동안 이제 농성을 해 오셨는데 농성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황분희: 농성은 후쿠시마를 보고 시작했어. 후쿠시마 핵사고 나는 걸 보고 그때부터 삼중수소 방사능 검사도 하니까 내 몸에 피폭이 되고 이러니까 한 11년 전부터 그렇게 시작해 한 거지. 그러니까 나름대로 그냥 시골 사람으로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뭐든지 다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10년 동안에 하기도 뭐 많이 했어. 기자회견도 했고 청와대도 찾아다녔고 국회도 일주일 투어를 해서 산업부도 갔고 법 발의도 해봤고 여러 가지를 해 봤는데 결과가 없으니까 좀 답답하지. 책임질 사람이 없어. 원자력에 관해서는 누구든지 얘기를 하면 어떤 곳이나 책임을 질 기관이 없어. 정부나 뭐 하여튼 뭐 정치인이나 뭐 더군다나 한수원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전혀
Q. 주민들이 이주 대책을 요구했을 때 한수원의 입장은 뭐였어요?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다는 이유가 뭔가요?
황분희: 그러니까 방사능 나오는 기준치 이하라서 못 해주겠다는 거고. 재산이 팔리지 않으니까 주민들이 한수원이 재산을 사라고 얘기를 했어요. 안 팔리니까 너희들이 매매해라. 매매하면 그 땅도 너그 게 되고 집도 너그 게 되고 그냥 우리 공짜로 주는 게 아니잖아. 무슨 보상을 해주는 게 아니니까 그냥 재산을 현 시가대로 사 달라. 사주면 우리는 어디로 가서 살든 우리가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가서 살겠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법이 없다는 거야. 법이 없어서 우리 보고 국회에 가서 법을 만들어 오라 하더라고. 인접지역으로 914m까지는 그 안에 있던 사람 다 바깥으로 내보냈어. 핵발전소 돔이 여기 있다면 이 줄이 914m라면 이 안에는 위험해서 주민들이 사는 사람들 다 내보냈어요. 그러나 이 선 하나에 따라서 이 바깥에는 안전하다는 거야. 그런 논리를 쓰고 있는 거라. 이건 논리에 맞지 않지. 주민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 되는 거야. 방사는 먹고 건강이 안 좋아서 사람들이 정말 암으로 해서 죽은 사람도 많아. 물론 원자력이 없는 곳에서 암으로 죽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이 시골 마을의 수치로 봐서는 많다 이거야. 그러면 그거를 어떻게든지 사업자 쪽에서는 자기들로 인해서 피해를 봤으면 자기들이 어떤 해결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한수원은 책임감 아무것도 없이 뭐 그냥 두 가지밖에 얘기 안 하는 거야. 기준치 이하고 법이 없다는 거. 법이 없어서 못 해 준다는 거. 한수원에서 말하는 그것뿐이야. 자기네들 방패막이야 그게.
Q. 결국 법을 만드는 곳은 국회고 정부잖아요. 국회와 정부는 어떤 입장이에요?
황분희: 그러니까 두 번이나 법 발의를 했잖아. 결국은 세 사람이 한 거지. 이전에 국민의 당 김수민의원이 했었고- 우리가 가서 설명회를 하고 막 할 때 와서 들어보고는 이거는 주민들이 너무 피해를 보고 있다 해서 발의를 했고 그다음에는 김석기 경주 국회의원이 했지. 다른 지역, 다른 당에서는 법발의도 하는데 당신은 경주 국회의원으로서 왜 가만히 있느냐 뭔가를 해줘야 될 거 아니냐. 우리가 뽑아준 국회의원인데 당신이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이렇게 아파하고 있으면 당신도 뭔가를 해야 될 거 아니냐 했을 때 억지로 그냥 법발의를 한 거야. 여론에 밀려서 다른 곳에서 하도 해주는데 자기가 그러고 있어 밀려서 한 번 했고 그다음에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님이 한번 했고. 발의는 했는데 제정은 안됐어.
Q. 이주대책을 위한 농성과 또 핵발전소 반대 투쟁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한수원이 계속 이렇게 부인하고 그러면 포기하는 주민들도 계시고 대책위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덜 적극적인 분들도 계시잖아요.
황분희: 우리가 여기에 3대가 같이 살았어. 이제 자식 둘, 손자 손녀 둘, 우리 둘, 6명의 3대가 같이 살면서 나는 뭐를 생각했냐 하면 그때 여기는 물도 먹을 수 없다. 우리가 이거 농사지은 먹거리도 방사능에 오염됐다. 그리고 공기도. 숨 쉬는 공기에서 제일 많이 들어오더라고. 방사능이 이제 공기로 인해서 이동을 제일 많이 한다고 해. 그러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느냐. 나는 내 손자들을, 내 자식들은 이런 곳에 방사능 원자력 있는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곳에서 키울 수가 없다. 나는 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한창 커가는 내 손자 위해서라도... 손자가 그때 5살인가 되는 거 막 쫓아다닐 때 쟤가 만약에 한 스무 살이나 열몇 살쯤 돼 가지고 암이 생기면 어떡하지 엄청 불안한 거야. 처음에는 정말 먹는 거 하나 여기서 나는 것도 하나 마음대로 먹고 싶지 않았어. 공기는 숨을 안 쉬면 죽으니까 어쩔 수 없고. 그러니까 이제 내보내 달라는 거지. 이 공기를 마시기 싫다는 거지. 그래서 나는 큰일을 한다는 것보다는 핵발전 정말 없어야 되는 거다. 이거는 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은 이제 나는 내 자식들한테는 이런 세상을 내 작은 힘이나마 안 물려줄 수 있으면 나는 이거를 해야 되겠다 싶은 생각에서 지금까지 있는 거야.
Q. 11년째 농성을 이어오셨는데 기존 농성장은 왜 철거가 된거죠?
황분희: 한수원에서 자기네 땅인데 사유지인데 이제 손해배상 청구를 한 거지.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서 이제 재판을 걸어와서 우리가 거기에 대응했고 우리는 뭐 어쨌든 사유지니까 비켜줘야 된다고 하니까 비켜주기로 결심을 한거지. 비켜준다고 해서 영원히 거기서 집회까지 하지 마라 이랬으면 또 생각이 또 달랐겠지. 거기서 버텼을 텐데 집회는 또 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래서... 그리고 우리가 지금 너무 사람이 적은 거야. 전부 나이도 많고 전부 80세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있어 봐야 세 명이 아침에 나와서 그거(농성) 하는데 정말 힘이 없어. 옛날에 십몇 년 전에는 정말 뭐라도 할 것 같았어. 진짜 하루에 서울을 막 갔다 오고 뭘 해도 지친 줄 모르고 내가 뭔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내 스스로도 자신이 많이 떨어지는 거야. 들으면 잊어. 나이 먹을수록 많이 또 잊어버리고 또 내 몸도 옛날 같지가 않고 이러니까 좀 그런 면에서는 많이 안타깝지. 그래도 해야지. 농성장을 오늘 옮겨 나갔잖아 이제 여기서 더 해야지. 이제는 더 해야지. 자기네들이 그렇게 나가면 우리도 이제 오기가 생기니까. 뭐를 하든지, 전국 어디라도 정말 내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가겠다는 거야. 가서 정말 이 동네가 이렇고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실체를 전 국민들이 모르잖아. 핵발전소 주위에 살면서 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자기네는 쉽게 전기 스위치만 올리면 전기가 환하게 쓰고 사니까. 이 전기 하나로서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실체를 모르고 있잖아. 근데 이거를 많이 알려야 돼. 알리고 같이 동참해서 이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지.
“그래도 사람이 있어서” 힘겨운 싸움 속 빛났던 순간들
황분희 부위원장은 10년 넘는 싸움 속에서도 함께 웃을 수 있었던 기억들을 꺼내며,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했고, 사람들과 함께여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함께한 11년의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버팀목이자 연대의 힘이었다.
Q. 길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적도 있으세요?
황분희: 사람들이 초창기에는 원자력 없이 전기 어째 쓰냐고 막 그렇게 따지고 드는 사람도 있었어. 요즘은 그래도 바깥에 나와서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수고하십니다. 우리도 원자력이 뭔지 몰랐지만 지금 보니 원자력이 참 그런데 고생하십니다 하고 또 그런 얘기를 듣고 이렇게 멀리서도 지금과 같이 이렇게 방문해서 우리와 같이 이렇게 이 더운 날씨에 함께 해주려고 하는 그럴 때 그래. 뿌듯하고 고맙고. 그래도 십몇 년을 잘 버텨오고 잘했구나. 주위에 그래도 사람이 있어서. 어쩌면 이주는 우리 개인의 일이지만 그래도 동참을 해줘서 같이 해주려고 하니까 고맙지. 그러니까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내가 뭐 큰 대단한 일은 하지 않지만... 처음에 시작할 때 여기 마을 분이 하는 말이 원자력하고 싸워서 못 이긴다. 그냥 힘 빼지 말고 그만두라고 늘 그렇게 조언을 해준 사람이 있었어. 그러나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있어. “누군가라도 해야 되는 거다. 다 귀찮다고 안 하면 핵발전소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지만은 계란으로 바위를 수백 번, 수천 번 치면 흠집이라도 날 거 아니냐” 그랬는데 지금은 그래도 조금이라도 미미하나마 흠집을 좀 낸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럴 때는 또 많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그런 생각도 있지.
이상홍: 그전에도 기뻐서 웃었을 때가 있었겠지만 나는 분희 어머니가 가장 기쁘게 웃을 때가, 지금 기억에 남는 건 작년 10주년 행사할 때 비 엄청 내릴 때 행진 끝나고 나서 사람들 모여 있을 때 마지막 얘기하실 때였어요.
황분희: 그때는 너무 기분 좋아. 비가 그렇게 오는데 이제 사람도 안 오겠다. 10주년 해야 되는데 비가 이렇게 많이 와서 누가 오겠냐 막 걱정하고 그랬는데 사람들이 그냥 다 오는 거야. 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많이 왔으니까 그때 너무 기분 좋았어. 비를 그냥 맞고 막 해도 너무 기분 좋은 거야. 아 이렇게 이 비 속에서도 이 행사를 한다고 이렇게 찾아와서 비를 맞고...끝나면서 내가 굉장히 참 크게 웃은 것 같아. 너무 고맙다고 내가 앞으로 더 힘내서 더 해보겠다고 막 웃었는 것 같아. 내가 생각해도 그때 정말 그때는 정말 너무 너무너무 기분 좋았어. 정말 좋고. 참 이주대책위 하면서 늘 참 속상하고 이랬는데 그때는 진짜 많이 웃고 진짜 속에서 우러나온 그대로의 웃음을 웃은 거 같아
Q. 11년 동안 농성하시면서 이상홍국장님과 함께 하시면서 어떻셨어요?
황분희: 이상홍 국장이야 뭐 말할 것 없지. 11년 동안에 이상홍 국장이라는 기둥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기둥에 기대서 지금까지 온 거지. 한 번씩 내가 막 국장님한테 막 짜증 내고 할 때도 있어. 막 마음대로 안 될 때는 그만큼 믿음이 있기 때문에 참 그렇게 했고 항상 고맙게 생각해. 그리고 또 주위에 또 여러 사람들이 아까 이재걸 같은 분이나 그런 사람들도 정말 많이 도와주려고 애쓰고 또 도와줄 사람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하면서도 그래 외롭지는 않다. 그래도 뭔가 옆에 또 사람이 있다. 이런 것들을 이제 느끼고 앞으로는 더 좀 열심히 더 해야지.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Q. 황분희 부위원장님이 이상홍 국장님을 기둥이라고 하셨는데 이상홍국장님께 황분희 부위원장님은 어떤 분이에요?
이상홍: 기둥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기둥 아니고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옆에 같이 있는 거... 옆에 같이 있는 거 정도인 거고 그리고 이제 탈핵 운동을 봤을 때 예전에도 제가 어딘가에서 그런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 황분희 어머니는 계속 연대하시는 분들한테 고맙다고 얘기하고 저한테도 뭐 그렇게 얘기하는데 저는 어머니께 진짜 고맙거든요. 탈핵 운동 현장이 많잖아요. 많지만 주민 분들이 지치지 않고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가지고 목소리가 내주는 곳이 거의 없잖아요. 어머니는 우리가 의지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 때문에 비빌 언덕이 있는 거예요. 그 옛날에 우리 새벽에 버스 타고 서울에 올라가서 월성 1호기 폐쇄하라고 기자회견 할 때도 바로 월성원전 앞에 사시는 주민들이 목소리를 같이 내주니까 우리는 진짜 든든한 거죠. 우리가 되게 도움을 사실 많이 받은 거죠. 그런 측면에서 고맙죠.
“기억하게 만드는 싸움” — 지치지 않기 위한 다짐들
잊혀져가는 핵사고의 위험, 되풀이되는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들. 황분희 부위원장과 이상홍 국장은 고단한 싸움 끝에서도 여전히 서로를 의지하며 앞으로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Q. 지금 제2 농성장을 차렸잖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좀 어떠세요?
이상홍: 솔직히 앞으로의 계획을 크게 고민해 보지는 못했고요. 솔직히 우리가 지금 수세적이죠. 한 11년 오면서 주민 분들도 많이 빠져나가고 여러 가지로 농성장도 철거당하고 지금 제2 농성장을 꾸리게 되는 수세적인 상황인 게 사실이고... 그에 더해 주민들이 농성하고 있는 그런 측면들이 어떤 사회적 의미가 좀 축소된 거 같아요. 그 의미를 다시 살리는 작업들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요. 11년째 농성을 하고 있는데 이게 어떤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건지, 주민들이 왜 꼭 이주를 해야 되는 건지와 관련돼서 정치권이나 시민 사회에 이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작업들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농성은 우리가 늘 하는 거지만 이 공간을 벗어나서 국회 토론회가 되었든 뭐든. 주변에 지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관련 연구 사업을 하든 그런 작업들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해야죠 또 그게 또 연결고리가 되어 가지고 또 생각지 못했던 또 길이 열리고 하지 않을까 해요. 황분희: 그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앞으로는 그냥 내가 건강해야 되고... 내가 목소리 낼 수 있고 내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동안에는 계속 하면서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를 하고 또 이주시켜 달라고 하고 또 더불어 탈핵도 해야 되고. 나는 원자력이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 이주도 해야 되지만 그렇게 앞으로는 하여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네요. 혼자서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주위에서 좀 많이 도와줘야 되고 이런 분들도 있고 그러니까. 어쨌든 국장님하고 열심히 좀 한번 해봅시다.
생명편에선 우리가, 생명편에 선 당신에게 (황분희, 이상홍님에게 보낸 편지)
오랜시간의 투쟁의 힘듦을 헤아릴 수가 없네요.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양연규)
거대한 세력에 맞서서 생명과 주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10년이 넘는 세월을 포기하지 않고 싸워온 황분희 부위원장님과 이주대책위 어르신들. 꼭 같은 세월을 항상 어르신들 곁을 지키며 힘이 되어주신 한국 탈핵운동의 대들보같은 이상홍 국장님. 감사하고 미안하고 존경합니다. (임영상)
소식들었습니다. 한수원이 기존 농성장 철거소송을 제기했고 이주대책위는 나아리 인근 어느 곳에 새로운 농성장을 차렸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듭니다. 핵발전소 때문에 전기 쓰는 사람 따로 있고 이로 인한 피해보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공정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싸우시는 주민분들 부디 용기 잃지 마시고 힘내십시오. 그대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서민태)
'기록적인 더위', '역대 최대의 폭염'이런 표현들을 마주할 때면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돼요. 사람들은 기후재난을 마주하며 에어컨을 더 틀고 싶다거나 전기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까... 그렇지 않을 거 같거든요. 진짜 지구가 아프구나, 기후위기가 심각하구나, 기후위기나 환경의 위기가 정말 나의 삶과 맞닿은 문제구나... 그렇게요. 그런데 오히려 정부나 똑똑한 전문가들이나, 정치인들은 인공지능이니, 반도체 산업이니 하면서 핵발전소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요. 그런 사람들이 정작 아무 것도 모르는 거 같아요. 정작 발전소나 핵폐기물을 떠안을 용기없는 자들이 늘어놓는 궤변일 뿐 그저 외면하고 싶은 걸까요.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벌어지는 일들이 있고, 과학적인 증명을 위해 더 노력하고 책임져야 할 이들이 있는 거겠죠. 그런데 정말로, 정말로 저는 월성의 주민들, 그리고 함께하는 탈핵 동지들이 제일 잘 알고 제일 명료하고 가장 뚜렷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8년째에는 2년만 더 버티자, 9년째에는 1년만 더 버티자 하며 10년을 넘게 농성을 이어 왔다는 황분희 부위원장님, 10년이라는 세월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요. 법과 정치가 우리의 편이 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외면해온 시간들. 우리를 세상에서 지우고, 우리의 싸움을 없었던 것처럼 만들려고 했던 시간들, 그 야속의 세월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감히 조금만 더 함께 싸우자고 말해도 될까요. 긴 세월 이미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다 하셨을 주민들과 연대자들께 조금만 더 힘내자고 해도 될까요. 세상에는 여러분이 묵묵히 가고 있는 길을 바라보고, 또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고. 우리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되자고 해도 될까요. 우리를 분명히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도 될까요. 한수원과 정부가 주민들의 건강피해에 대한 책임질 수 있도록, 더이상 핵발전소로 인해 고통받고 희생당하는 이들이 없도록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할께요. 황분희 부위원장님, 이상홍 국장님 고맙습니다. 우리 세상에 지지 말아요. (평화)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는데 제대로 연대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콩취)
작년에 취재 나갔었던 뉴탐사 윤서연 팀장입니다. 원전과 떨어진 곳에서 주거를 할 권리를 묵살하고 강제로 천막철거 했다는 소식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두분의 무기력해져버린 지침이 너무 마음이 아펐는데 한수원 관계자분들 양심을 이런 식으로 팔지 말았으면 합니다. 저곳에서 평생 살아오신 주민들께 못할 짓 그만 멈춰주시고 지금 거주지 말고 안전하게 노후를 편히 쉴 수있게 저분들의 심정을 헤아려주셔야 할 때입니다. 지금도 너무 늦었어요. (윤서연)
월요일 아침에 이어지는 상여시위를 볼 때마다 마음 속 무거운 짐이 늘어납니다. 농성장이 월성 주민들의 목소리였다면, 농성장 철거는 그 목소리를 누르려는 폭력일 겁니다. 그 폭력에도 꿋꿋이 맞서며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주민분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동안 누군가의 희생과 자연의 착취 위에서 이어졌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연대의 마음을 잇겠습니다. (이영경)
11년동안의 농성으로도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이 사회가 너무 잔인하네요. 그 힘든 시간에도 계속 싸움을 이어가시는 주민분들께 존경과 응원을 전하며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이동환)
Q. 메시지 보내 주신분들, 그리고 생명편 영상을 보실 분들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아마 오늘 함께하고 싶으셨는데 한 말씀씩 해 주신다면 부위원장님 먼저 해 주세요.
황분희: 여기 보면 내가 얼굴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고 아니면 기억을 못하는 분들도 있는데 물론 그분들은 저를 아실 거예요. 나는 뭐 많은 사람을 대하다 보니까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까 자꾸 잊어 먹고 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메세지를 보내줘서... 힘들 때 한 번씩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힘이 날 것 같아요. 고맙고 감사하고 정말 이제 앞으로는 좀 행복하게 집회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새로 이사 온 우리 농성장 너무 예쁘게 해놨으니까 한번 오세요. 결국 홍보관 앞(제 1농성장 자리)에서는 쫓겨났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로 농성장을 마련했으니까 한번 놀러 오셔서 새로운 집 구경도 하시고요.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우리 서로 한번 만나고 또 한번 방문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이상홍: 저는 짧게 한마디만 드릴게요. 제가 서 있어야 할 곳에 변함없이 서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