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home
사회전환의 이정표, 탈성장
home
🇧🇷

남피디의 벨렝체류기(1)

한국의 겨울초입에 지구 반대편 한 여름의 브라질 벨렝에 다녀온 남태제 피디. 완연한 봄이 되어서야 벨렝 체류기를 쓰고…. 공유합니다>.< 남태제 피디의 벨렝 체류기는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3시간을 날아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독일 생맥주 한 잔으로 5시간을 버틴 후 상파울루로 향하는 LATAM 항공편에 올랐다. 다시 11시간의 비행. 상파울루 공항에서는 6열짜리 좌석 소형 기종의 국내선으로 갈아탔다. 3시간을 더 날아가니 구름 아래로 광대한 아마존 강과 밀림이 보였다. 적도 바로 아래, 아마존이 대서양과 만나는 구역. 브라질 북부 파라주의 주도 벨렝이었다.
제30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30) 행사장
만 이틀을 날아서 벨렝에 온 이유는 제30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30) 때문이다. 애초에 COP30에 참여하는 경희대학교 학생들의 활동 기록영상을 함께 제작하는 조건으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경비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이 있었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기후위기 해결에 별 효능도 없는 COP를 보기 위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게 맞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생태위기의 최전선인 아마존에서 열리는 COP이었고, 아마존 선주민들이 대거 초청되었으며, 같은 기간에 민중정상회의도 열리는 지라, 기후정의를 부르짖는 남반구와 세계시민사회의 생생한 목소리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가기로 했다. 그 생생한 목소리를 새알미디어가 현장에서 전할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벨렝 시가지는 한적했다. 건물들은 오래되고 낮았다. 서울이라면 재개발이라도 해야 될 풍경으로 인식되었겠지만, 이곳은 브라질. 넓고 탁 트인 도로, 적도의 쨍쨍한 햇살, 망고나무 가로수 그늘, 오래된 시가지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들과 삼삼오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는 여유와 활력이 느껴졌다. 사실 이런 풍경, 이런 분위기 좋다.
(벨렝시가지 모습)
며칠 뒤에 이런 경험을 했다. 민중정상회의가 열리는 파라주립대학교를 향해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신호에 걸려 차량들이 멈춰섰다. 횡단보도를 건너 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2리터짜리 플라스틱 물병을 들고 버스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버스를 살짝 움직여 길 가에 정차하더니 앞 문을 열고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온 남자가 운전기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한다. 웃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물을 나눠 마시면서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5분에서 10분 사이의 시간동안 이어졌던 것 같다. 그 사이 나는 운행 중인 버스 운전기사가 내려서 지인과 잡담을 하는 데 놀랐고, 도대체 버스가 언제 다시 출발하나 조바심 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포기하고 두 사람의 정겨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대화가 끝나고 두 사람은 포옹을 나눈 후 헤어졌다. 버스 기사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시동을 걸었다. 놀라운 것은 5분에서 10분 사이의 시간 동안 버스가 무단 정차를 하고 있었는데도 손님 중 아무도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뭐라고 말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벨렝시가지 모습)
우리 일행이 묵을 숙소에서도 이런 필이 느껴졌다. 예전에 학교였던 건물을 지역 공동체 협동조합이 여행자 숙소로 운영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아마 교실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공간에 이층 침대가 여섯 개가 놓여있어 얼핏 보면 수용소 같은 분위기. 이런 공간이 대여섯 개가 있고, 화장실 겸 샤워장은 70~80년대를 회상하게 하는 모양새였다. 분명 오래되었고 불편한데 그걸 불편하고 낡았다고 느끼지 않게 만드는 무언가가 그 공간 속에는 있어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COP30이 열리는 동안 지냈던 숙소. 맨 아래는 샤워실)
생각해보니, 그건 이 여행자 숙소를 관리하는 수 많은 사람들 – 관리를 총괄하는 매니저롤 보이는 몇 명과 매점을 담당하는 분들, 청소를 맡아주시는 분들, 경비를 담당하는 분들 하여 열 명이 넘는 현지인들이 결코 크지 않은 공간 안에서 북적대며 여행자 숙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 의 친절한 웃음, 말이 통하지 않지만 표정과 손발로 대화하기, 자상한 관심, 우리의 요구를 바로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서 온 몸으로 애쓰는 모습 등등에서 느껴지는 환대와 정성의 공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낡고 불편한 시설이었지만 오래된 옛 동네에 돌아온 포근함이 느껴졌을 것이다.
지내면서 보니, 학교 시설이어서 자그마한 도서실도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은 회의도 하고, 각자 작업도 했다. 나도 문서를 작성하고, 촬영본을 백업하고, 긴급하게 영상 편집을 하고 하는 작업들을 모두 그곳에서 했다. 새벽이나 밤 늦은 시간에도 불을 밝히고 조용히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매점을 운영하는 중년 여성 분께서 차려주시는 조식도 맛있었다. 비록 그곳에 머무른 11일 내내 똑 같은 메뉴의 조식이었지만 기본 구성이 좋았다. 열대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신선한 과일쥬스도 좋았고 가끔 특식이라며 직접 갖다주시는 쌀로 만든 밀전병 같은 하얀 팬케이크 맛도 좋았다. 덕분에 우리는 편안한 밤을 보내고 매일 아침 COP30 행사장과 민중정상회의 공간으로 힘차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본격적인 취재기는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