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배경]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안전장치입니다. 하지만 무안공항 참사와 4대강 녹조, 전국 곳곳의 신공항과 난개발 사업을 취재하면서 공통된 의문을 마주했습니다.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였지만, 그 뒤에는 환경영향평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왜 위험은 제대로 예측되지 않았을까. 왜 멸종위기종과 중요한 생태환경은 평가에서 누락됐을까. 왜 거짓과 부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돼도 개발은 멈추지 않았을까. 새알미디어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지역 주민과 전문가, 환경운동가, 현직 환경영향평가사, 참사 유가족, 정부와 국회 관계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이 탐사취재는 환경영향평가가 왜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있는지, 무엇이 제도를 개발의 들러리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사람과 자연을 지키는 제도로 되돌리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 지를 네 편에 걸쳐 기록합니다
새알미디어는 이번 탐사취재를 통해 환경영향평가가 왜 반복적으로 실패하는지 추적해왔다. 1편과 2편에서는 무안공항과 4대강, 거제 노자산과 낙동강 하구를 통해 거짓·부실 환경영향평가의 실태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부산의 한 상가 건물. 한때 환경영향평가 현장조사를 전문으로 하던 E업체가 있던 사무실은 지금 비어 있다. E업체는 거제남부관광단지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해 환경영향평가 자료를 122회 거짓 작성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고 결국 폐업했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 업체의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새만금신공항, 제주 비자림로, AWP 영양풍력, 대저대교와 엄궁대교 등 전국의 개발사업들이 멸종위기종 누락, 조사 축소, 위험 왜곡 등으로 환경영향평가 거짓 부실 작성 판정을 받았거나 검토 중에 있다.
새알미디어는 12년 동안 환경영향평가 현장 생태조사에 참여한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단장과 현직 환경영향평가사, 전문가들을 만나 그 구조를 들여다봤다.
현장조사자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오동필 단장은 현장조사자들이 대체로 성실하게 조사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려고 굉장히 열심히 조사합니다.”
하지만 조사자의 노력만으로는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만들 수 없다. 문제는 조사에 주어지는 시간과 비용이다. 생태계는 계절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1년 동안 사계절 조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계약에서는 조사 횟수를 줄여 단가를 낮추는 일이 흔하다.
“실질적인 단가가 맞지 않으면 조사 횟수는 무조건 줄어듭니다.”
멸종위기 동식물이 누락되고 위험요인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조사자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충분히 조사할 수 없는 계약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전문적인 과업지시서가 부실조사를 만든다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자가 평가업체를 선정하고, 평가업체가 다시 생태조사 전문업체에 조사를 맡기는 구조다. 현직 환경영향평가사 P씨는 환경영향평가 용역이 발주되면 입찰을 통해 용역금액이 먼저 결정되고, 그 금액에 맞춰 조사 횟수와 범위가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조사 항목과 횟수를 담은 과업지시서가 전문적인 검토보다 과거 사례나 행정 편의에 따라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낙찰되는 순간 조사 범위와 비용이 사실상 결정됩니다. 계약이 끝난 뒤에는 조사 횟수를 늘리기도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새로운 멸종위기종이 발견돼도 계약된 예산을 넘어 추가 조사를 하기 어려운 구조다. 필요한 조사에 맞춰 비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비용에 맞춰 조사가 이루어진다.
환경영향평가법은 초기 단계에서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구성해 조사 범위와 항목을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P씨는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검토가 어렵다고 말했다. 환경영향평가 항목은 20개가 넘지만 환경영향협의회의 전문가 정원은 많아야 3~4명 수준이다. 분야별 전문성을 모두 갖추기 어렵고, 개발 예정지를 직접 답사하는 절차도 사실상 없다. 결국 부실하게 설계된 조사계획을 협의회가 바로잡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사업자에게 불리한 평가는 살아남기 어렵다
환경영향평가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는 평가를 받아야 할 사업자가 평가업체를 직접 선정한다는 점이다. 조사를 충실히 할수록 멸종위기종이 발견되고, 사업 축소나 입지 변경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는 사업자에게 불리한 결과다. 현직 환경영향평가사 P씨는 사업자에게 불리한 평가서를 작성하면 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사업자는 사업의 이익이 줄어드는 평가서를 원하지 않습니다. 결국 계약이 해지되고 그 업체는 업계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서왕진 의원은 이와에 대해 "사업자와 평가업체가 사실상 주종관계"라고 표현했다.
“평가를 받아야 할 사업자가 평가업체를 지배하는 구조에서는 공정하고 독립적인 평가가 어렵습니다.”
평가업체는 계약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자의 기대를 의식할 수밖에 없고, 결국 부실하거나 왜곡된 평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서식지와 전문가 의견서
설령 현장조사에서 멸종위기종이 확인되더라도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자주 등장하는 것이 '대체서식지'다. 거제남부관광단지에서도 대흥란과 거제외줄달팽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거제생태연구소 원종태 소장은 좁은 공간에 많은 개체를 옮겨놓는 방식으로는 생존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기존에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는 곳을 대체서식지로 지정해서 개발 부지 안의 멸종위기종 개체들을 옮겼을 경우 옮겨 놓은 개체들이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체서식지는 아직 그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미봉책인데, 환경영향평가에서 멸종위기종 보호방안으로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전문가 의견서를 통해 조사 결과를 완화하는 것이다. 오동필 단장은 새만금신공항을 사례로 들었다.
“평가서만 보면 보전해야 한다는 결론인데, 뒤에 전문가 의견서를 붙여 '사업을 계속해도 된다'는 방향으로 의미를 바꿔버립니다.”
<개발의 들러리가 된 환경영향평가> 제2편에서 다룬 대저대교와 엄궁대교 환경영향평가서에서도 교량 건설이 큰고니를 비롯한 야생조류 서식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서들을 덧붙여 교량 건설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했다. 객관적인 조사 결과보다 개발을 유지하기 위한 논리가 우선하는 구조인 셈이다.
사업자가 평가하는 구조가 문제다
정혜경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의원도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문제로 사업자가 평가비용을 부담하고 평가업체까지 직접 선정하는 구조를 꼽았다.
“사업을 추진하려는 사람이 평가비용을 내고 평가업체를 선정하는데 어떻게 중립적인 평가가 가능하겠습니까.”
홍석환 부산대학교 교수 역시 현재의 환경영향평가법은 개발 중심 시대에 만들어져 환경을 보전하기보다 개발 절차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돼 왔다고 지적했다.
개발사업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과 평가 권한까지 갖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익적 판단은 공공이 담당해야 하지만 지금은 사업자가 사실상 평가 전 과정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의 결과
환경영향평가 자료를 거짓 작성한 업체들은 처벌받았다. 그러나 업체 몇 곳을 처벌한다고 거짓·부실 환경영향평가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현행 제도에서는 현장조사자도, 환경영향평가사도 사업자의 요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조사 범위와 비용은 계약으로 제한되고, 사업자에게 불리한 결과는 대체서식지나 전문가 의견서로 완화된다.
결국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기보다 개발을 정당화하는 절차로 작동하고 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거짓과 부실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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